2005-12. 향유와 눈물
설교자 김기석
본문 마 26:6-13
설교일시 2005/3/20
오디오파일 s050320.mp3 [4396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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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와 눈물
마26:6-13
(2005/3/20, 종려주일)

[그런데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는,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것을 보고 분개하여 말하였다. "왜 이렇게 낭비하는 거요? 이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요!" 예수께서 이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치르려고 한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된 사순절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번 사순절 기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지내는 게 아닌데'하면서도 좀처럼 밀려오는 일들을 물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허둥거리며 지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그 시간이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지긋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눈길을 느꼈습니다. 그 눈길은 한없이 부드러웠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믿음의 사람이란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를 갖지 못해 마음이 원통했던 한나는 실로의 성소에 가서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때로는 통곡하고, 때로는 속으로 중얼거리는 그를 보면서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취해서 횡설수설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끊으라"며 한나를 책망합니다. 그러자 한나는 자신은 취한 것이 아니라고, 다만 마음이 슬퍼서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라고 말합니다(삼상1:9-15). 기도는 표현이 아닙니다. 심정이 통하는 것입니다. 통한다고 하는 것은 순환적인 것입니다. 나의 심정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마음으로 느끼기도 해야 합니다.

[속 물]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렸던 한 여인의 아름다운 헌신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환자인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식사 중인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뜻밖의 사태 앞에서 매우 당황스러워 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습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단 화부터 내고서, 자기들이 화를 내는 까닭을 찾아봅니다. 그들이 찾은 이유는 정당해 보입니다. 그 여인이 귀한 것을 허비했다는 것입니다. 그 향유를 팔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고, 그 돈이면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완벽합니다. 그들은 이제 자기들이 화를 내는 도덕적인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러한 '이타주의적인 견해'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에 있는 것이 욕심임을 잘 알고 계십니다. 말로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척 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기일 뿐입니다.

옛날에 백성의 기림을 받고자 하나, 실은 재물을 탐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일찍이 문에다 방을 내걸었습니다. "아무 날은 내 생일이니, 삼가 선물을 바치지 말도록 하라." 이윽고 고을 사람을 모아놓고 백로를 제목 삼아 각각 시를 짓게 하였습니다. 대개 그 결백함을 칭송케 하려 함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문득 이렇게 읊었습니다. "날아 올 젠 학인가 여겼더니만, 내려앉아 어느새 고기를 찾네." 17세기의 선비인 송시열이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청렴해 보이던 공직자들이 땅 투기를 하고, 위장전입을 하고…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모습을 지켜 보아온 우리들은 이 말의 뜻을 잘 압니다. 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들먹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온통 자기로 가득 차 있어서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책망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여인의 행동은 당신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인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렸고, 예수님은 여인의 말없는 말을 듣고 계셨던 것입니다.

[인생의 막장에서]

주님이 여인을 칭찬한 것은 향유를 부어드린 행동 자체가 아닙니다. 여인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스승이신 예수님의 고뇌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새롭게 열리는 메시아의 왕국에서 맡게 될 자기들의 역할을 생각하면서 들떠 있습니다. 스승의 마음을 흔들리고 있는데, 그들은 사뭇 기쁜 표정입니다. 하지만 그 여인만은 주님의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많은 죄를 용서받고, 주님의 큰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디에도 희망이 없는, 어쩌면 죽음만이 희망일 수도 있는 생의 자리에서 여인은 주님을 만났고,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다소 어려운 말입니다만 80년대 초에 저는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이라는 말과 만났습니다. 세상이 어떠한지를 가장 예민하게 지각하는 것은 땅의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경제지표가 나아진다고 말해도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경기가 없다고 하면 그 말이 맞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병든 사람들, 나그네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한 시대의 온도계라는 말입니다.

더 이상은 넘겨볼 페이지가 없다는 것
아무리 동전을 쑤셔 넣어도
커피가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
나도 모르게 세 가지 소원을
다 말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래, 그래서
등불도 없이 밤길을 나서야 한다는 것
끝이라는 것
막 배가 떠나버린 선착장에서
오래도록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서 있는다는 것
오래도록 시간표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
(한명희, <끝이라는 말>)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은 이 시속의 인물처럼 등불도 없이 밤길을 나서야 하는 처지였고, 배가 떠나버린 선착장에서 서성이는 심정으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왔고, 그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으셨고, 새로운 삶의 길로 그를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여인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여인의 눈물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여인은 분명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위해 흘리는 여인의 눈물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향유보다도 향기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색함의 바위를 깨뜨릴 때]

제자들의 눈은 궁극적일 수 없는 것들로 말미암아 어두워졌습니다.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많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향유와 자기들이 차지할 자리에 마음을 빼앗겨 그들은 예수의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가장 윤리적으로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곡해했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잘도 드리면서 정작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신의는 버렸습니다(마23:23). 주님은 나귀를 타고 사람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지만, 주님은 외로우십니다.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밤이면 십자가의 불빛이 이 땅을 붉게 수놓고 있지만 주님은 지금 아무도 당신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울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그 사랑으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십자가를 질 차례입니다. 향유 한 옥합은 여인의 전 재산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인은 주님을 위해 그것을 아낌없이 부어 바쳤습니다. 지금 누구에게 혹은 무엇을 위해 우리 생의 가장 귀한 것을 바치고 있습니까?

조금씩이라도 괜찮습니다. 주님을 위해 시간을 내십시오. 주님의 발길이 머무는 그곳에 우리도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마음 아파하며 돕고 싶어하는 이들을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림으로 우리 눈은 밝아질 것이고, 그 눈물이 땅에 떨어질 때 평화의 열매는 늘어날 것입니다. 자신에게로 자꾸만 움츠러들지 말고, 우리의 이웃들을 향해 문을 열 때, 인색함의 감옥에서 벗어나올 때 은총과 기쁨의 샘이 우리 앞에 솟구칠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소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5년 03월 20일 13시 36분 06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