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3. 희망이 된 사람들
설교자 양재성
본문 롬8:18-30
설교일시 200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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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이 된 사람들 ▣
로마서 8장 18-30절

<<오늘 하루 동안>>
100가지 종류의 동식물이 멸종되고
6천만평의 숲이 사막으로 변하고
8,600만 톤의 비옥한 땅이 침식되고
1억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생태주의자 예수)

▣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지난 5월 10일은 경기 용인시 대지산 살리기 운동이 승리한 날입니다.
대지산은 수지 죽전리와 분당 구미동 사이에 위치한 해발 380m의 산으로 주말이면 2000여명의 주민이 찾아 산책을 즐기는 곳입니다.
대지산 살리기 운동은 지난해 7월 18일 환경정의시민연대와 경주 김씨 종친회 등이 공동으로 “후손에게 아름다운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며 대지산 일대 10만평에 대해 그린벨트 지정청원 운동을 벌이면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주민과 환경정의시민연대 회원 등 256명이 2000만원을 모금해 지난해 11월 대지산 중턱 땅 100평을 구입하는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토지공사가 올 2월 토지를 강제수용해 대지산 일부를 벌목하면서 개발이 본격화 되자 시민단체와 주민은 지난달 29일부터 ‘나무 위 시위’와 ‘금줄치기’운동 등으로 맞섰습니다.
마침내 건설교통부는 5월 10일 죽전지구 내 약 8만5000평을 택지지구에서 제외해 공원 또는 녹지로 지정키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가 토지수용까지 끝낸 후 이를 번복해 개발을 중단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환경현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보여준 사건입니다. 또한 주민들이 힘을 모으면 거대한 개발 마피아에 맞서 주변 환경을 살려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

이번에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앞장서서 전개한 내셔날 트러스트 운동은 눈여겨 볼 만합니다.
이 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변호사 로버트 헌터(Robert Hunter), 여류 사회활동가 옥타비아 힐(Octavia Hill), 목사 하드윅 론즐리(Canon Hardwicke Rawnsley) 세 사람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이 개발논리에 밀려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유지들을 사들여 영구보존하는 자연보호운동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무등산과 갯벌지역 오지 등에서 내셔날 트러스트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지산이 좋은 선례가 되었기 때문에 이 운동이 국토의 난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확산되리라고 봅니다.

내서녈 트러스트 운동에서 희망을 봅니다. 한 사람의 힘은 약하지만 생명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사람들이 뜻을 모으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영혼을 가진 한 사람은 이미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습니다.
▣ 나무를 심는 사람들>>
장 지오노가 쓴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프랑스 프로방스의 어느 고원지대, 탐욕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마구 나무를 베어내어 황폐해진 땅, 버림받은 땅, 이 황무지에 끊임없이 나무를 심고 가꾼 외로운 양치기의 헌신으로 아름다운 숲이 살아나고 계곡엔 다시 물이 흐르게 됩니다. 그러면서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고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새로운 세상이 태어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분별없는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자연과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가를 보여주며 한 사람의 거룩한 노력으로 자연이 어떻게 새롭게 태어나는가를 그리고 이러한 성스러운 삶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가까이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그 외로운 양치기는 자식을 잃고 얼마 뒤엔 부인까지 잃게 되자 이 숲으로 들어와 양을 치게 됩니다. 그는 매일 같이 상수리 100개를 심었고 몇 년 동안 십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중에 만 그루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나무를 심었고 어린 나무순을 해치는 양을 계속해서 키울 수 없어 업종을 바꿔 벌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황무지 같았던 땅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그렇게 아름다운 숲으로 바뀌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다고 찬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생명을 사랑하는 위대한 영혼이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생명을 심은 사람 때문에 지구는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 육의 속한 사람, 성령에 속한 사람>>
성경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육에 속한 사람이고 하나는 성령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에 속한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죽음이고 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사람이 붙들고 쓰는 사람이고 성령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이 붙들고 쓰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붙들고 쓰는 사람은 돈과 권력과 힘을 따라 살다가 그것들이 망할 때 함께 망합니다. 하나님이 붙들고 쓰는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참여하다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성인이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몽당연필>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연필 한 자루를 선물 받으면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연필이 닳고 닳아 몽당연필이 되면 볼펜 껍데기를 주워서 머리부분을 깎아내고 볼펜 껍데기에 끼워서 마지막까지 사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몽당연필, 손에 잡기에도 불편한 연필, 이제 막 버리려는 보잘것없는 연필이란 뜻입니다.
연필은 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연필이 작가의 손에 잡혀 있으면 소설도 나오고 시도 나옵니다. 그 연필을 화가가 잡고 있으면 유명한 그림이 나옵니다. 누가 그 연필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그 연필을 통해 엄청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문제는 나 자신이 아니고 나를 붙들고 계신 분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결정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몽당연필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면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이루는 곳에 사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과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집중 시켜야 할 것은 나를 붙들고 있는 존재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 말은 지금 나는 누구를 붙들고 있느냐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붙들고 있는 만큼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 세 가지 탄식>>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세 가지 탄식과 신음을 듣게 됩니다.
피조물의 탄식과 하나님의 아들들의 탄식, 그리고 성령이 탄식이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엔 피조물의 탄식으로 가득합니다.
어디에서나 부서지고 깨어지고 죽어가는 생태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하와이 군도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홍수와 가뭄이 발생하고 지속적인 사막화로 일년에 한반도 크기의 숲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구체온이 상승하면서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환경재앙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또한 오존층 파괴로 인간은 백내장, 피부암 등 각 종 질병에 노출되었습니다.
하늘의 오염에 이어 땅의 오염도 심각합니다.
과다한 농약 살포와 산성비로 인한 토양오염은 먹을거리 오염으로 이어져 심각한 질병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물의 오염은 하천 생태계를 죽이고 갯벌은 물론 바다생태계를 죽이고 있습니다.
택지개발, 도로건설, 골프장 건설 등 경제개발이 지구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생명복제로 인간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생명나무열매에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환경호르몬은 다양한 생물 종을 말살시키고 인간의 종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과히 지구 생태계는 총체적인 오염으로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 좋다고 말씀하셨던 아름다운 세상을 심하게 망가트려 신음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탐욕입니다. 창조질서를 잘 보전하고 돌보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첫 번째 사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평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착취하였습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수 억년에 걸쳐 형성된 화석연료를 다 써버렸습니다. 지금 교회는 환경문제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교회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거절합니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에 몇 몇 교회를 찾아가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야기해보면 큰 담에 막혀 돌아오는 느낌을 받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착착 달라붙는 느낌을 받는 교회가 있습니다.

다행이 청파교회는 진정한 예언자, 김기석목사님이 계셔 예수께서 꿈꾸셨던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나라에 청파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아주 특별한 은총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리한 신학자죠, 한인철목사님, 한목사님께서 3년 동안 우리나라 유명한 교회를 탐방하고 내린 결론은 교회 안에 예수가 없다는 것이었답니다. 결국 청파교회에 오고 나서야 희망을 보고 청파교회에 소속하기로 교회를 정하였다는 얘기를 듣고 이 교회가 보통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맞습니까? 맞아요. 목사님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고 기도하시는 장로님들의 기도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교회 분위기며 로그, 도서관, 봉사단, 동아리활동, 평화교실, 등등.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조금만 더 다이나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피조물의 탄식은 자신들을 이 죽임과 폭력의 사슬에서 구원받기 위함이며 구원을 성취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 피조물들을 살려내고 평화를 가져올 하나님의 아들들을 기다리는 탄식입니다.
거기 누가 있어 이 신음하는 피조물들의 희망이 되시렵니까? 아주 큰일도 처음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작은 믿음에서 산이 옮겨지는 것을 보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제 신음하는 피조물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는 것이 이 시대에 신앙생활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백성의 탄식소리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망치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사는 삶에 대한 절규이며
하나님의 원초적 사명인 창조세계를 잘 돌보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고대하는 외침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탄식은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회복되고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이루기 위한 소리입니다. 이 일을 위해 나설 하나님의 아들들을 세우고자 하는 탄식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일하십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성령은 그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 프라이 부르크>>
독일의 프라이 부르크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생태적 도시 중의 하나입니다. 그 도시는 한 때 철로가 생기면서 산업이 발전하여 오염이 심각했던 도시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환경도시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곳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쓰레기 분리하는 것을 배우는 등 환경교육을 철저히 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재생용지를 사용하고 책은 반드시 물려줍니다. 그들이 환경 사랑은 남다릅니다. 방학을 이용한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전거를 이용합니다. 실제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르도록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한 대중교통요금은 아주 저렴하여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양열과 풍력이 그것입니다. 재생 가능 에너지인 녹색 에너지를 추진한 것은 정부가 아니고 시민이었습니다. 자신의 돈으로 연구하고 발전기를 설치하면서 95년도에 녹색사회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국가 정책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결국 시민의 힘으로 정부를 움직였고 향후 50년 동안 현재 에너지의 절반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고 그 목표의 절반을 녹색 에너지로 바꾸겠다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공업화로 인하여 망가진 도시를 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절망적이었습니다. 그 때 몇 몇 사람들이 이 도시를 살리자고 나섰던 것입니다. 누구도 지금의 도시를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환경파괴로 인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은 이 사람들의 희망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놀라운 힘이었습니다.

▣ 피조물이 고대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그렇다면 신음하는 피조물이 고대하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성령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생명평화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사소한 생명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도 우주의 생명을 살리는 한 몫을 감당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시인으로 80년대를 풍미하다가 지금은 영성가로 생명평화운동가로 새롭게 길을 걸어가는
박노해시인은 그의 시<사람만이 희망이다>에서 이렇기 노래합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무엇을 많이 소유했을 때가 아닙니다.
사람이 행복할 때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었을 때입니다.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비전이 여기에 있고 하나님의 뜻도 여기에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각 처에서 신음하는 피조물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도 이 창조세계를 보전할 하나님의 백성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청파교회를 통해 우리를 생명 평화의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생명평화의 일꾼이 되어 생명살림의 길, 평화세움의 길을 걸으라십니다.
그 길은 목숨을 건 사랑으로만 걸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을 걷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눈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은 모든 생명 속에 나타납니다.
예수는 이것을 깨닫고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는 것을 삶의 의미로 여겼습니다.
예수는 이 깨달음을 전하기 위해 언제라도 자신의 생명을 던져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 희망의 본이 된 예수>>
예수는 전적으로 능동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신념대로 사셨습니다.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권력에 두려워하지 않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또한 예수는 전적으로 수동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셔서 왔고 지금 하는 말도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말이고 행동도 하나님께서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동의 사람이었고 세상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능동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확연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희망이 되셨고 당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희망이 되셨습니다.
예수는 모든 것을 대함에 사랑으로 오직 온전한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내가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세우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모든 만물을 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길도 평화를 세우는 길도 결국은 사랑으로 대하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생명과 평화의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사랑에 눈먼 사람입니다. 사랑의 불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고백록에서
<사랑하십시오, 그런 다음에는 아무렇게나 사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만물을 사랑의 눈으로 보고 사랑으로 대하는 것에서 생명과 평화의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이 잘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는 곳에 하나님도 함께 가시고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겐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으며 생명살림의 길과 평화를 세우는 길을 걸음으로 하나님의 희망이 되시고 신음하는 피조물들의 희망이 되십시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5년 06월 07일 07시 50분 0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