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8. 샛별을 품에 안고
설교자 김기석
본문 계2:18-29
설교일시 200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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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을 품에 안고
계2:18-29
(2005/7/10)

["두아디라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그 눈이 불꽃과 같고, 그 발이 놋쇠와 같으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미혹시켜서 간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보아라, 나는 그를 병상에다가 던지겠다.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을 당하게 하겠다. 그리고 나는 그의 자녀들을 반드시 죽게 하겠다. 그러면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겠다.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 곧 사탄의 깊은 흉계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인 너희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다만 내가 올 때까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어라. 이기는 사람, 곧 내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 <그는 쇠막대기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고, 민족들은 마치 질그릇이 부수어지듯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내가 나의 아버지께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다스리는 것과 같다. 나는 그 사람에게 샛별을 주겠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 有情해지지 않을 수 없어서
시인 정진규 선생님이 어느 날 당신이 주례를 섰던 젊은이들이 사는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는 그날 당신을 위해 담가두었다는 매실주 한 병을 다 마시고 거나하게 취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렇게 대취하도록 마신 까닭을 이렇게 말합니다. <"날 위해!"/그 말이 자꾸 有情해서/한 병을 다 마셨다/바닥을 냈다> 왠지 이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가?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토록 유정해지는 나를 나는/좋아하지 않지만/그 혼미함을 알고 있지만/이 말씀엔 어떤 장사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몸詩·10] 중에서) 그렇지요. '날 위해'라는 말에 유정해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 정경을 머리에 그려보다가 저는 난데없는 연상 때문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날 위해" 돌아가신 주님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참 무정하게 살아왔습니다. 수도 없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을 묵상했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했지만, 그것이 나와 관련된 것임을 나는 자주 잊고 살았습니다. 모처럼 저도 마음이 '유정해져서' 찬송가 145장 3절을 반복해서 불렀습니다.

나 무슨 말로 주께 다 감사드리랴
끝없는 주의 사랑 한없이 고마워
보잘 것 없는 나를 주의 것 삼으사
주님만 사랑하며 나 살게 하소서

어떤 일을 하거나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순발력이 좋은 사람이 있고, 지구력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순발력이 좋은 사람은 반짝이는 재능과 기지로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지구력이 좋은 사람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순발력이 좋은 사람의 문제는 지속의 열정이 부족하여 늘 일을 중도에 작파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지구력이 좋은 사람은 재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지속의 열정이 있기에 한번 시작한 일이나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갑니다. 나무를 보십시오. 나무는 뿌리를 한번 내리고 나면 싫건 좋건 그 자리에서 삶을 마쳐야 합니다.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자기 자리를 지켜냄으로써 나무는 거목으로 자랍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순발력보다 지구력이 좋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묵을수록 향기가 더 진해지는 포도주처럼, 세월이 갈수록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신앙의 훈련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아디라 교회는 작지만 지구력이 좋은 교회였던 것 같습니다. 두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놋쇠와 같으신 하나님의 아들은 이 교회를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19)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아디라 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는 칭찬을 듣고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에 대해서도 칭찬을 듣고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인들은 그리스도인답게 살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자기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에서 미움이 불쑥불쑥 솟아나오려 할 때 사랑을 택해야 하고, 두려움과 의심이 우리 영혼을 우울하게 만들 때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남들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이 섬김을 위해 그 자리에 있음을 자각하고, 몸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이 일 때마다 용서의 지평을 조금씩 더 넓히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당장은 힘들지만 그렇게 애를 쓰다 보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지요?

뭔가를 배워볼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목표를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 겪는 난감함 때문입니다. 아무리 해도 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탓하면서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다보면 어느 결엔가 최초의 어려움이 극복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장한 것이지요. 운동도 공부도 악기 연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제대로 믿어보자"고 다짐하고 애를 쓰면 우리는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새 사람이 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면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두아디라 교회는 우리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 십자가의 걸림돌을 제거하지 말라
그런데 이렇게 칭찬을 받은 두아디라 교회이지만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두아디라 교회가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했다"고 꾸짖습니다. 이세벨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페니키아의 공주로 이스라엘왕인 아합의 아내가 된 사람입니다. 이세벨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으로 이방 종교의식을 퍼뜨렸습니다. 그 때문에 예언자인 엘리야는 이세벨과 대결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세벨이 신앙공동체에 가지고 들어온 이방적 요소와 그로 말미암은 분란을 염두에 두고, 두아디라 교회를 미혹된 길로 이끌고 있는 사람을 '이세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예언자를 자처했습니다. 어쩌면 남다른 영적인 경험을 한 사람이겠지요. 그 경험을 잘 내면화하고, 그 경험을 더 큰 영적인 진보를 위한 디딤돌로 삼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 경험을 내세우면서 자기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음에 허영심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영적인 신비 체험으로 인해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들의 눈에는 다른 이들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자기만큼 영적인 세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야말로 사탄이 가장 기뻐하는 때입니다.

이세벨로 지칭되고 있는 그 사람은 교인들의 영혼을 도둑질했습니다. 믿음의 길에서 직면해야만 하는 도전들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성서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영혼을 진보의 길이 아니라 타락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사람들을 넓은 길, 편안한 길로 인도했던 것이지요. 십자가의 거칠거칠한 것을 세련되게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된 신앙생활은 취미생활일 뿐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세벨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편의주의적인 신앙에 길들여진 영혼들은 깨어나기가 어려운 겁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준엄하게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세벨의 교훈에 이끌리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굳게 붙잡고 있으라"(25)고 말씀하십니다. 쓸데없는 고집은 버려야 합니다. 붙잡아야 할 것은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버려도 좋을 것을 굳게 잡고, 굳게 잡아야 할 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가르침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특히 어렵고 난감한 상황에서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의 근육이 자랍니다. 끝까지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그 권세는 다른 이들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는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처리하는 권세입니다. 진리의 권세입니다.

● 우리는 이미 기적
주님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끝까지 이기는 사람에게 "샛별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샛별은 금성입니다. 개밥을 줄 무렵이면 떠오른다 하여 '개밥바라기'라고도 하고, 새벽이면 동쪽 하늘을 비춘다 하여 '샛별'이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을 보면 '빛나는 샛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진리의 길을 걷는 성도는 가슴에 샛별이신 예수님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샛별을 품고 사는 한 어둠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닙니다.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가도 길을 잃지 않습니다. 샛별을 가슴에 품고 걷는 성도들이 있어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어느 겨울 밤, 인디언 양치기 소년이 산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소년은 바로 그 다음 날 기적처럼 살아서 가족들에게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돌아왔냐고 물었더니,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캄캄해졌을 때, 저쪽 산에서 다른 양치기의 불빛이 반짝였어요. 저는 그 불빛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집에 돌아가는 생각만 했어요."
누구에게나 어두운 밤, 추위와 싸워야 하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건너편 산의 불빛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불빛은 우리 자신이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불빛을 찾고 있으며, 다른 꿈을 꾸고 있고, 다른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스테니슬라우스 케네디, [영혼의 정원] 중에서)

런던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이 지구촌에는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국은 디프 임팩트(Deep Impact) 호를 띄우고, 임팩터를 날려 저 우주 공간을 날고 있던 템펠1(Tempel1)이라는 혹성을 맞혔습니다. 그것도 미국의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 말입니다. 그들은 기적 같은 일을 이뤘다고 환호성을 올립니다. 이 일을 위해 3,300억 원을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기술은 무기를 개발하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위대한 진보에 박수만을 보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진짜 기적은 한 존재가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어 세상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기적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가슴에 샛별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등 록 날 짜 2005년 07월 10일 13시 21분 1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