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0. 변화를 향해 마음을 열라
설교자 김기석
본문 전5:1-3
설교일시 2005/7/24
오디오파일 s050724.mp3 [6135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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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향해 마음을 열라
전5:1-3
(2005/7/24)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 마음을 조급하게 가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하여라.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많아진다.]

●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한 주간 몹시 무더웠습니다.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하느라고 어린 학생들과 땀흘린 교사들이 참 고맙고 대견합니다. 비교적 더위를 잘 견딘다고 생각하는 저도 영 머리가 무겁고, 정신이 몽롱해서 어떻게 한 주간을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젊었을 때에는 이열치열이라는 말 그대로 더위 속으로 뛰어들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객기도 부릴 수가 없게 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선교 여행을 다녀온 제자들을 보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막6:31).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지음 받은 존재 가운데 일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사람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하심으로써 쉼이야말로 건강한 생명을 위해 꼭 필요한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쉼이 없는 노동은 '소외된 노동'입니다. 할당량을 채워야 했던 히브리 노예들의 노동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노동에는 기쁨도 없고 보람도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휴가 여행을 떠납니다. 참 귀한 시간입니다. 휴가는 우리 삶에 리듬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일상의 자리를 떠나 보아야 자기 삶의 모습이 더 잘 보이게 마련입니다. 어느 분이 후배의 병문안을 갔습니다.
"어디가 아픈가?"
"직장암이랍니다."
"직장생활에 너무 안달했군."
"예?"
"똥끝이 타서 생긴 병이야. 안달을 멈추게. 그래야 나아."
"예."
대답은 쉽게 했지만 1년이 지난 후까지 그는 안달하며 삽니다. 물론 병은 더 깊어졌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를 통해 소리 없이 쌓이는 먼지처럼 우리 속에 더께로 앉은 피로와 스트레스와 안달하는 마음을 다 털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떤 휴가를 계획하고 계십니까? 바다로 가는 분도 계시겠고, 산을 찾는 분도 계실 겁니다. 요즘은 휴가 풍속도 다양해진 것 같습니다. 가족 단위로 농촌의 삶을 체험하는 이들도 있고, 들꽃 여행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더위를 무릅쓰고 도보여행이나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강골의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절을 찾아가 고요히 자기 마음을 살피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휴가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이 시원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여름에 며칠만이라도 침묵과 고독의 호사를 누려보고 싶습니다. 내 속에 침묵의 영토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고독을 싫어합니다만, 고독은 기독교적인 가치이고 도전입니다. 남들에게 따돌림을 받아 겪게되는 고독 말고, 잃어버린 자기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과한 고독은 기독교인들의 소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늘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하나님 앞에 앉으셨습니다. 그 시간이야말로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예수님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은 물론이고 신앙생활도 쇄신되기를 소망합니다. 코헬렛(전도자)의 권고가 우리의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 변화를 향해 존재를 개방하라
그는 먼저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操心이라 할 때의 操는 '잡을 조'입니다. 그러니까 조심이란 마음을 든든히 붙잡는 것입니다. 마음을 오로지 해서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것이 예배자의 마음입니다. 영적인 쇠퇴의 징조가 뭔지 아십니까? 예배에 대한 기대와 떨림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신앙생활의 경우는 영혼의 질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매 주일 설교를 준비하지만, 아직도 설교 준비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저의 한 주간은 말씀을 기다리는 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빠지기 쉬운 영적인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행동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잘 참석하고, 헌금도 충실히 하고, 교회 행사에 잘 동참하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행실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행하는 번다한 여러 가지 일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더 착한 사람이 되고,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1)

바울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된다"(롬10:17)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리석은 선포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전1:21)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일체의 선입견을 버리고 말씀 앞에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말씀은 때로는 달기도 하지만, 쓰기도 합니다. '단 말씀'은 우리를 내적인 확신의 길로 인도합니다. '쓴 말씀'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합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변화를 향해 내 존재를 개방한다는 것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다면 우리는 이전의 사람일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의 현존 앞에 앉으라
코헬렛은 기도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 마음을 조급하게 가져서도 안 된다.(2)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 빈 말을 되풀이하는 기도를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코헬렛의 가르침도 같은 내용입니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함부로'와 '조급하게'(급한 마음으로)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를 달리 표현하자면 '생각 없이'가 될 것입니다. 진정이 담겨 있다면 어눌한 기도도 좋은 기도입니다. 하지만 겉멋을 부리거나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기도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른들 앞에서 말씀을 드리게 되면 단어 하나라도 조심스럽게 선택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코헬렛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양한 의미망을 거느리고 있겠습니다만,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를 잊지 말라는 말인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말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마음이 서로 통하는가입니다.

기도는 '아룀'과 '들음'의 통일입니다. 내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기도의 날숨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기도의 들숨입니다. 날숨 없는 들숨 없고, 들숨 없는 날숨 없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들숨으로서의 기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작년 여름 수양회에서 우리는 관상(향심)기도에 대해 배웠고 또 직접 경험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 기도를 드리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기도를 드리면서 경험한 당혹스러움에 대해 말합니다. 오로지 마음을 하나님께만 집중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보면 불쑥불쑥 솟아나는 잡념들 때문에 도무지 기도한 것 같지 않다고들 말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속상한 일들이 떠오르고, 왠지 기분 나쁜 사람들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읽어야 할 글들이 생각나고, 글의 실마리가 될만한 좋은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도를 중단하고 떠오른 글귀를 적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욕구조차 억누르고 지긋이 앉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할 까닭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내 생각보다 훨씬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청원기도든 향심기도든 드리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쓸모가 있나 없나를 따지기 때문입니다. 온갖 방해거리가 많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현존 앞에 앉아 있는 사이에 우리 삶은 변화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홀로 앉아 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 단순하고 소박한 삶
신앙생활의 쇄신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우리 삶을 단순하고 소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素朴이라는 단어에서 朴은 '나무껍질' 혹은 '통나무'(樸)를 가리킵니다. 소박한 삶이야말로 우리 영적 성장의 끌차입니다. 통나무는 가르지 않은 것이고, 투박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주하게 살기에 정신을 여기저기 갈라놓고 삽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일의 홍수 속에서 우리 발은 땅에 닿지를 않습니다. 둥둥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어제 한 일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우리 영혼은 긴장으로 팽팽합니다. 걱정이 팔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생의 작은 무게도 견디지 못합니다. 마음이 전일(專一)하지 못하니, 걱정이 많습니다. 코헬렛은 말합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많아진다.(3)

이일 저일에 분주하게 쫓기다보면 우리 영혼은 흐리멍덩한 상태에 빠집니다. 현대인들은 일종의 영적인 피로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왠지 사는 게 시들해져서 매사가 귀찮고 노곤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기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분에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뻐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삶이 어지러울수록 근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올리는 것이 초월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도우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낙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 속에서도 기쁨을 향해 돌아설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빛을 향해 돌아설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가 기쁨을 선택하고 빛을 선택하는 순간 우울함과 어둠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무더위는 우리를 영적인 나태함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급증에 안달하던 마음을 고요히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다보면 우리 속에 시원한 영혼의 샘물이 고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여름이 우리 모두의 영적인 쇄신의 기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5년 07월 24일 15시 12분 5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