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4. 자비로운 사람들
설교자 김기석
본문 눅 6:32-36
설교일시 2005/8/21
오디오파일 s050821.mp3 [6321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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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사람들
눅6:32-36
(2005/8/21)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너희를 좋게 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만 너희가 좋게 대하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한 일은 한다. 도로 받을 생각으로 남에게 꾸어 주면,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죄인들에게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로제 수사의 죽음
저는 지난 금요일자 신문을 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흔 살이 된 수사 한 분이 피살당했다는 소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프랑스 동부 브루고뉴 지방에 있는 떼제 공동체의 창시자인 로제 수사(Brother Roger)였습니다. 그는 지난 8월 16일 떼제 공동체의 본원인 '화해의 교회'에서 2500명의 젊은이들과 저녁 기도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고요하고 엄숙한 그 기도회 중에 36살 먹은 루마니아 여성이 불쑥 앞으로 튀어나와 흉기를 휘둘렀고, 목에 자상을 입은 로제는 곧 숨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는 한 평생 기도와 화해를 위해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떼제 공동체는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몇 달이라도 시간을 낼 수 있으면 떼제 공동체에 가서 지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습니다. 로제 수사의 그 선하고 맑은 얼굴을 대하고, 그와 함께 기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분을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혼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평생을 화해를 위해 헌신해온 그가 그렇게 어이없이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겠지만, 인류는 마더 테레사의 죽음 이후 또 하나의 위대한 정신을 잃었습니다. 로제 수사는 늘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성령이여,
매 순간 당신을 향해 돌아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우리 안에 사신다는 것을
당신이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며,
우리 안에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잊어버립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당신의 현존은 신뢰이며
끊임없는 용서입니다."

매 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살아가던 위대한 혼이 이제 숨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이사야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눕고,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는 세상,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꿈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전쟁과 폭력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지구를 몇 번씩이나 파괴하고도 남을 핵무기 위에 누워 잠을 잡니다. 평화를 꿈꾸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꿈조차 잃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제게는 하나님의 한숨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면서 마음 아파 하셨다."(창6:5-6)

이런 상황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아픔이 느껴지십니까? 저는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응원하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나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우리의 응원가가 공허한 노래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내적으로 변화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연줄로 분할된 세상
새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 마음씀이 하나님을 닮은 사람, 그가 바로 새 사람이고, 그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입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36)

우리에게 주어진 존재로서의 목표는 명백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더 덧붙일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고, 하나님처럼 마음을 쓰려고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십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런 공평하심이 다소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났든 못났든,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선하든 악하든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사람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은 선의 결핍'이라고 말했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의 바탕을 잃어버린 가련한 사람들일 따름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죄와 따돌림이 아닙니다. 경멸의 눈빛과 가혹한 말은 상대방의 마음에 깊은 원한 감정을 품게 할 뿐,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사랑과 용서와 받아들여짐의 경험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깨어나게 합니다.

편가르기에 익숙한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선 밖으로 밀려날까봐 늘 전전긍긍합니다. 그래서 '줄 만들기'에 열을 올립니다. '빽'(?)이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학연, 지연, 혈연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세상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연줄'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합리성보다는 情理가 지배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가까운 사람인가(親) 먼 사람인가(疎)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행동 양태가 달라집니다. 물론 가까운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시커먼 멍이 들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그 가슴의 멍을 풀어주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 사랑으로의 개종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이 서있는 자리에 서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믿음이 자라려면 아픔과 눈물의 땅에 발을 들여놔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빌2:6-7). 바울 사도는 로마의 교인들에게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라"(롬12:16)고 말했습니다. 그게 '나'로부터 해방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로부터 해방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몇 백 원을 받기 위해 우리 교회를 찾아온 이들이 약 70명 가량 되었습니다. 파도치듯 끊임없이 몰려오는 그들을 맞느라 오전 내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의 손에 동전 몇 개씩을 쥐어주다가 어느 순간 내가 그들을 기계적으로 대하고 있음을 자각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인격적 교감도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기도를 바쳤습니다. 나는 사랑하고 존중하라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지, 동전 몇 닢을 던져주라고 보냄 받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왜 구걸을 하고 사냐면서 그들을 도우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방편이 아니라, 삶의 이유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무너진 그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바치는 일입니다. 물론 그런 이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에도 동참해야 하겠지요.

사람들은 우리 나라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경제발전을 꼽습니다. 그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의제(agenda)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제가 발전한다고 우리 삶의 질이 높아질까요? 세상이 더 평화로와질까요? 아닙니다. 경제발전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의 비핵화도 중요하고 통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에 자비심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사랑으로의 개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향해 개종한 사람들인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 거룩한 영적 공간을 마련하라
예수님은 사랑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35)

성도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사랑의 한계를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우리를 좋게 대하는 사람만 좋게 대하고, 우리에게 되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준다면 우리는 아직 사랑으로 개종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죄인들도 그 정도는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상대의 행동에 따라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룩한 영적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을 향한 분노와 미움이 일어날 때마다 심호흡을 하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면, 분노와 미움의 감정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꾸어주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존 디어 신부는 이런 삶의 방식을 '비폭력'이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비폭력은 날마다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가 동등한 존재요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로서 이미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었고 서로간에도 화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되살려 내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힘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부터 옵니다. 그래봐야 세상은 달라질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들의 작은 노력을 귀하게 거두셔서, 그것을 크게 만드시고, 마침내 세상에 평화의 열매로 되돌려주실 것이라는 근원적 확신을 가지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고, 선대하고, 그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네가 있어 내 마음이 시원하다' 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2:10)

이런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면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5년 08월 21일 12시 14분 1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