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5. 마음을 넓히라
설교자 김기석
본문 눅 9:51-56
설교일시 2005/8/28
오디오파일 s050828.mp3 [6108 KBytes]
목록

마음을 넓히라
눅9:51-56
(2005/8/28)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이 길을 떠나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였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 낯선 존재
저는 낯가림이 심한 편입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면 일단 말수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상황에 가든 분위기를 주도해 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낯선 것은 나쁜 것도 아니고,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쎙 떽쥐베리의 <어린왕자>는 여우를 통해 ‘길들인다’는 말을 배웁니다. 지구라는 낯선 별에 와서 외로웠던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안녕” 하고 말을 건넵니다.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넌 누구니? 참 예쁘구나.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하고 응답합니다. 그러자 여우는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길이 안 들었으니까”라고 말합니다. 어린왕자는 여우에게 ‘길들인다’는 말의 뜻을 묻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말하면서, 안타깝게도 그건 잊혀진 말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많아야 하고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데, 사람들은 이제 너무 바빠서 관계를 맺는데 필요한 시간도 참을성도 다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우정은 함께 공유해 온 ‘시간’의 열매입니다. 현대인들이 낯선 타자와의 만남을 꺼리면서 익숙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집착하는 것은 분주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낯선 것은 우리 삶에 불편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낯선 것과 대면하지 않고는 우리 정신이 커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존재입니다. 하지만 자꾸 그와 만나다 보면 우리는 그들도 우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아톤>이라는 영화는 자폐 증세를 보이는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눈물겨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영화는 영화적으로도 성공했지만,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결코 낯선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인가를 보여주었다는 측면에서 매우 소중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조금씩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에 눈을 떠가고 있습니다.

● 왜곡된 정신의 위험
그런데 신체 장애나 정신 지체보다 더 큰 문제는 왜곡된 정신입니다. 특별히 다른 이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드러내는 정신의 타락은 매우 심각합니다. 그것이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는 매우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인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이라는 사람이 며칠 전에 한 말을 두려움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자기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미국에 적대적이라는 이유로 차베스(Hugo Chavez)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암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차베스가 석유 자원을 무기 삼아 미국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를 제거하기 위해 2000억 달러가 드는 전쟁을 수행하기보다는 솜씨 좋은 저격수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CIA요원이나 국무성의 유력 인사가 아니라, 복음 전도자라는 데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 어디에서 이런 무서운 교훈을 끌어내는 것일까요? 그런 왜곡된 정신, 악마화된 정신, 괴물로 변해버린 정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이 세계의 딜레마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비폭력을 실천한 분이십니다.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은 ‘加害’와 ‘被害’라는 폭력의 악순환을 벗어난 한 존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까닭은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완전히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모욕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되갚아 줄 생각을 포기하는 것일 겁니다. 폭력과 불의를 용인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이겨내자는 것입니다.

● 상처입지 않는 예수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일어난 한 일화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고 전해줍니다. 그것이 한가로운 여행이었다면, 혹은 영광을 위한 여정이었다면 굳게 결심까지 할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그것은 고난을 향한 행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비장한 여정이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사자들을 앞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몽둥이를 들고 나왔는지 싸늘한 눈길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예수 일행을 환대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누가는 그 이유를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단어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일으키는 정서적 반응은 매우 적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의 질서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앗수르의 침공 이후에 이방인들과 피가 섞였다고 해서 예루살렘의 옛 질서는 그들을 이방인 취급을 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에 불인두로 지진 상처처럼 아프게 새겨진 것은 소외감이었습니다. 그러니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수님 일행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겠지요.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채 마음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그들이 참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라 할 수 있는 야고보와 요한의 반응은 더욱 딱합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반응에 분개하여 말합니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가슴에 마치 잉걸불이라도 품은 것 같은 격렬한 반응입니다. 그들은 엘리야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진설해 놓은 제물을 활활 사르던 갈멜산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식식거리는 제자들이나 영적으로 미숙한 사람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꾸짖을 생각도, 그들을 훈계할 생각도 없습니다.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고는 다른 마을로 향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냉대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아무와도 맞서지 않고 길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예수님은 참 자유롭습니다. 상처받을 ‘나’가 없으니 앙심을 품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반응에 상처를 입는 것은 ‘자존심’ 때문입니다.

기차가 막 출발하려는 데 어떤 사람이 플랫폼에서 애타게 ‘슈레겔’을 부르더랍니다. 한 사람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부르던 사람이 달려와 느닷없이 뺨을 한 대 때리고 가버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창문을 내리더니 배를 움켜잡고 웃었습니다. 영문을 몰라하는 이들에게 그가 말합니다. “저 바보, 내가 슈레겔인 줄 알았나봐….”

성내고 토라져봐야 결국 상처를 입는 것은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화를 내거나 잘못을 저지르거든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자기 마음을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에 저항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생각할수록 화나네.” 이게 뭡니까? 적어도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발을 맞추거나, 부채질하는 일을 버려야 합니다. 1세기의 스토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그런 경우를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정을 얻으려면 이 정도는 지불해야겠지.” 시도 때도 없이 화내는 사람은 내적인 여백이 적은 사람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독재정권과 치열하게 싸운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싸우라”고 말합니다. 비웃는 웃음은 안 됩니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앙심이 없어야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
나는 우리 시대의 불행은 유능한 사람은 많지만 큰 정신이 없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하자면 통 큰 정신이 없습니다. 작은 물살에도 이리 까불리고 저리 까불린다면 언제 한번 마음 후련한 자유를 누려보겠습니까? 예수님은 당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품어 안으셨습니다. 당신을 배신하는 유다를 보고 불쌍하다 하셨습니다. ‘참 불쌍한 사람,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게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유다는 스스로 제 꼬리를 밟고 쓰러진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다른 제자들에게 명시적으로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그가 변화되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그 마음에 구부러진 것이 없으신 분이요, 막힌 데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시84:5)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고후6:13)

제가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성구들입니다. 내 마음이 누군가에 대한 서운한 마음으로 답답해질 때, 선하고 따뜻한 마음이 줄어들 때마다 그 구절들을 떠올리며 깊은 묵상에 들어가면 마음이 시원해짐을 느끼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통 큰 정신인 것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그런 냉대를 당하셨는데도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앙심을 품지 않으신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이상적인 제자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데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위 말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눅10:30-37)에서 사마리아 사람을 좋은 이웃의 본보기로 들고 계십니다. 또 고침을 받은 나병환자 열 사람 가운데 예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단 한 사람으로 사마리아 사람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 정신입니다. 가야 할 길이 참 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지 않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예수 정신이 아닌 군더더기를 조금씩 덜어내다 보면 어느 결에 얼굴빛 환한 사람, 마음 따뜻한 사람, 사람들에게 살맛을 돌려주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구름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본래 우리는 가을 하늘처럼 영혼이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본래의 깨끗함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큰 정신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참고>
"I don't know about this doctrine of assassination, but if he thinks we're trying to assassinate him, I think we really ought to go ahead and do it. It's a whole lot cheaper than starting a war, and I don't think any oil shipments will stop. But this man is a terrific danger, and this is in our sphere of influence, so we can't let this happen. We have the Monroe Doctrine, and we have other doctrines that we have announced, and without question, this is a dangerous enemy to our south, controlling a huge pool of oil that could hurt us very badly. We have the ability to take him out, and I think the time has come that we exercise that ability. We don't need another 200-billion-dollar war to get rid of one strong-arm dictator. It's a whole lot easier to have some of the covert operatives do the job and then get it over with."

- Pat Robertson, advocating the assassination of Venezuelan President Hugo Chavez

등 록 날 짜 2005년 08월 28일 12시 15분 2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