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38. 오늘 우리가 먹는 만나
설교자 김기석
본문 출 16:14-21
설교일시 2005/09/18
오디오파일 s050918.mp3 [5491 KBytes]
목록

오늘 우리가 먹는 만나
출16:14-21
(2005/9/18)

[안개가 걷히고 나니, 이럴 수가! 광야 지면에, 마치 땅 위의 서리처럼 보이는,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주께서 너희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각자 먹을 만큼씩만 거두라고 하셨다.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장막 안에 있는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씩 거두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하니,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기 먹을 만큼씩 거두어들인 것이다. 모세가 그들에게 아무도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고,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었다. 그랬더니, 남겨 둔 것에서는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겼다. 모세가 그들에게 몹시 화를 내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마다, 자기들이 먹을 만큼씩만 거두었다.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은 다 녹아 버렸다.]

● 구호의 세상
오지 여행가로 널리 알려진 한비야 씨는 지금 <월드 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는 48시간 이내에 그곳에 도착해야 합니다. 사서 고생을 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고된 일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한비야 씨는 그것이 '자기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정말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냐고? 그가 최근에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제목의 책을 냈습니다. 그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구호의 세상입니다.

"구호의 세상은 우리가 아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는 학교나 사회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건 무한 경쟁의 법칙, 정글의 법칙이라고 배운다. 이런 세상에서의 생존법은 딱 두 가지. 이기거나 지거나, 먹거나 먹히거나다. 그러나 구호의 세상은 경쟁의 장(場)이 아니었다. 우리 서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었다. 세상에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같은 사람이 어떤 때는 강자였다가, 다른 때에는 한없는 약자가 된다. 이렇게 얽히고설켜 있으니 서로 도와야 마땅하다는 것이 구호 세상의 법칙이었다. 멋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세상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졌다."

그는 긴급구호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현장 운동가 로즈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반은 다음의 세 마디가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내가 뭐 해 줄 것 없어요?"
"그거 한번 해볼까요?"
"와, 참 잘했어요."
진심어린 배려, 도전 정신, 칭찬과 격려의 말이 구호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긴급 구호의 현장에 갈 수는 없지만, 우리 삶의 자리 어디에서나 누군가의 필요에 응답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이에 대한 배려이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고, 북돋고 일으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만나, 맛나
애굽 땅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난감한 상황을 만났습니다. 애굽에서 준비해 온 음식이 다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과 싸워야 하고, 밤이면 광야의 추위와 싸워야 했던 그들은 극도의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불리 먹어도 힘겨운 광야에서 그들은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이 힘겨운 행군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심정이 거칠어지게 마련입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말미암아 생지옥으로 변한 뉴올리언즈에서 사람들이 상점을 약탈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만, 먹을 것이 없어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들에게 도덕적인 판단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히브리인들의 절망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저는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까지 이어진 광야를 지나면서, 광야를 방황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난감한 처지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아무도 방도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었습니다. 배고픔과 두려움이라는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도움은 위로부터 왔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그들은 광야에 가는 싸라기 같은 것이 덮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내린 서리와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이게 뭐지?" 히브리말로는 '만후?'입니다. 그들은 싸라기 같은 그것을 모아 입에 넣어보았습니다. 달콤했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양식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먹은 그 양식을 '만나'라고 합니다. 그것은 '만후'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이게 뭐지?' '하나님이 주신 양식이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의 은총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가 먹는 음식은 하나님의 내리신 양식이 됩니다. 하지만 자기 만족에 겨운 사람들은 그렇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밥을 함부로 먹습니다. 남기고, 버리는 일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하늘의 양식을 먹는 그들은 또 하나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식구 수대로 식구 한 명에 한 오멜(약 1.4리터)씩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하자 많이 거두는 사람도 있고, 적게 거두는 사람도 있었는데, 오멜로 되어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부려서 만나를 여퉈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음날 해가 떠오를 무렵이 되면 벌레가 생기고 악취가 풍겨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명백합니다. '獨'차지는 '毒'차지라는 사실입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른 채 자기 몫 이상의 것에 욕심을 내면 그것은 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쉬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기독교인의 경제윤리는 '만나'의 나눔에 그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우리가 먹는 음식과 누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겨야 합니다. 또 남이 누려야 할 몫까지 싹쓸이를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조금 여유가 있으면 이웃과 나눠야 합니다. 그래야 '맛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나눠먹으려면 이웃과 사랑으로 '만나'야 합니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가 만날 때 하나님은 하늘의 양식으로 우리를 배부르게 해주십니다.

● 마음 따뜻한 이야기 둘
어린이들까지 함께 예배 드리는 오늘 저는 스스로 만나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신 분도 계시겠습니다만 지난 8월 달에 <우리말의 달인>이라는 퀴즈 프로그램에 참여한 50대의 어느 교사 이야기는 우리 가슴에 훈훈한 봄바람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부친의 사업 실패로 동생들과 함께 비닐 하우스에서 생활하는 최양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밝은 웃음을 읽지 않던 최양이 경제난으로 말미암아 그토록 원하던 교사의 꿈을 포기할 형편에 놓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도 넉넉한 형편이 못되었던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해 상금을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는 퀴즈 프로에 출연 신청을 했습니다.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양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습니다. 그는 퇴근 후의 모든 약속을 접어둔 채 귀가하여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고, 마침내 300여만의 상금을 타서 최양에게 보냈습니다.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올해 73세인 농부 홍한표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얼마 전 자비로 쌀 천 가마를 사서 북한에 보냈습니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1984년에 큰 물난리를 겪은 할아버지는 먹을 것조차 없어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북한이 이재민들을 위해 쌀과 구호품을 보내왔고, 할아버지는 북한 쌀 40킬로그램을 받아 두 달 여를 살 수 있었습니다. 살아 생전에 꼭 그날의 고마움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기회가 왔습니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과 농토가 미군기지의 이전지에 편입되게 되어, 그는 편입보상금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돈으로 인근에서 쌀을 사들였습니다. 천 가마니, 21년 전 그가 받은 쌀의 2천 배에 달하는 양입니다. 가격으로는 무려 1억 7천 만원 어치입니다. 그는 개인 자격으로는 처음으로 그 쌀을 25톤 트럭 4대에 실어 북한에 전달했습니다.

삶이란 고마움을 아는 것입니다. 잘 살고 못 살고의 차이는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고마움을 안다면 소유가 적어도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낯모르는 소녀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50대의 교사나, 20여년 전의 고마움을 잊을 길 없어 기어코 그것을 갚고자 하는 70대의 할아버지나 다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억만금을 가져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줄 줄 모르면 그는 가난뱅이입니다. 하지만 가진 것은 비록 적어도 더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여는 사람은 부자입니다. 그가 소유하고 있던 것은 물질이지만, 그것을 누군가를 위해 나눌 때 정신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일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한가위는 우리 삶의 뿌리를 돌아보며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는 명절입니다. 음식을 함께 나누고, 정을 나누면서 우리는 잃어버린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을 더 필요한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때 그것은 '하늘의 양식', 곧 '만나'로 바뀝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기적을 일상 속에서 경험하며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호의 세상에서 즐겨 사용되는 용어 기억나시지요? "어디 한번 해볼까요?" 이게 우리의 말이 되기를 원합니다. "와, 참 잘했어요." 이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5년 09월 18일 12시 10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