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44. 몸부림
설교자 김재흥
본문 마16:24-28
설교일시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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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30-종교개혁주일

몸부림

마태복음 16:24-28

루터의 종교개혁
일반적으로 역사는 종교개혁의 시점을 1517년 10월 31일로 잡고 있습니다. 그날 32살의 젊은 루터 교수는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면죄부의 부당성에 대한 언급을 중심으로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였습니다.
중세 교회에서 ‘면죄부’는 일종의 참회의 제도로 행해졌습니다. 속죄에 대한 인간의 행위를 강조했던 가톨릭은 금식과 기도, 금욕과 헌금을 강조하였는데 면죄부는 교황이 그 판매 권한을 쥐고 있던 것으로 증축중에 있던 성 베드로 성당을 완공하기 위하여 그리고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판매를 권장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흥강사들 중에 건축헌금 잘 나오게 하는 목사가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도 면죄부 판매에 끗발 날리던 신부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테첼이었습니다. 테첼 신부의 설교 선전문구는 그 당시에도, 지금도 아주 유명한 것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드린 헌금의 동전이 면죄부 헌금통 속으로 짤랑 소리를 내며 떨어질 때 여러분의 부모님의 영혼은 연혹에서 하늘 위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미 죄의 문제는 인간 자신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루터에게는 ‘헌금이 죄를 사해준다’ 그것도 ‘내 자신의 죄가 아니라 죽은 이의 영혼을 살린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었던 것입니다. 95개조의 반박문의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교황은 죄를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에 의해 죄가 용서받은 것을 그는 확언할 수 있을 뿐이다.(6조) 용서는 연옥을 포함하지 않는다.(5조) 그러므로 교황은 연옥의 형벌로부터 어느 누구도 해방시킬 수 없다.(20-29조)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우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불태워 재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50조) 어찌하여 교황은 부유한 크라수스(Crassus)보다 훨씬 부요하면서 성 베드로 성당을 자신의 돈으로 지으려고 하지 않는가?(86조)

그 반박문의 문제 제기를 교황쪽에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인쇄술의 발달로 전국 곳곳으로 퍼진 루터의 글은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되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고 그래서 그날이 종교 개혁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황의 권한중 중요 권한이었던 면죄부 판매에 대해 루터가 반대하자 많은 이들이 호응하였습니다. 종교 지도권을 남용하고 부와 권력의 중앙에 있던 교황에 대해 실증을 느끼던 지방의 제후들은 경제, 정치적인 이유로 루터를 적극 후원했고, 부패했던 카톨릭에 대해 염증을 느끼던 자유로운 영혼들도 크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시작한 새로운 운동은 스위스의 쯔빙글리, 칼빈등과 함께 중세 유럽에 커다랗고 새로운 공명을 만들게 되었고 결국 오늘의 개신교회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루터에 대한 다양한 평가
오늘날 루터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다양합니다. 먼저 전통적으로 개신교회에서는 루터는 참된 믿음의 길을 열어 놓은 사람으로, 진정한 신앙의 개혁을 이룬 사람으로 줄곧 평가 되어왔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바울의 로마서를 인용한 칭의(稱義)신학은 개신교 신학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카톨릭에서 파문당하면서까지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사제들의 전유물이던 라틴어로 되어 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일반 대중에게 말씀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 믿음 안에서 만인이 동등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며 사제의 중재 권한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만인사제설을 주장한 사람, 그 유명한 찬양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작자.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그의 책 [청년 루터]에서 루터의 존재를 심리학계의 프로이드와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초의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절대 이성 시대의 끝에 서 있었던 것처럼 루터는 절대 신앙 시대의 끝에 서 있던 최초의 개신교도였다.” 오늘날의 심리학이 프로이트에게서 태동했고 아직도 그의 큰 영향력 아래 있는 것처럼 오늘날의 개신교가 루터롤부터 시작되었고 그의 신학을 넘어서고 있지 못하다는, 루터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는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루터가 ‘뛰쳐나온’ 가톨릭 쪽에서는 상당히 다른 시각으로 루터를 보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개신교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유명한 책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에서 저자 김 안토니오 신부님은 다음의 브리테니커 사전에 나온 말을 인용하며 루터의 종교개혁을 평가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종교적 요소가 현대적 견지에서 과대 평가되어 왔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독일 제후들이 루터주의를 강행시키는데 있어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루터는 분명 신비주의의 한 지도자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곧 종교개혁은 교회를 re-form하자는 신앙적 운동이 아니라 당시 교회에 불평이 있던 사람들, 어려운 선행은 필요 없고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된다는 달콤한 선전에 비상한 매력을 느끼는 무리들, 교의야 어찌되었든 독일인의 교회는 독일인에 의해서 세워져야 한다고 믿었던 국수주의적 충동에 이끌린 자들, 오랫동안 바라던 교회의 혁신이 루터에 의해 이루어진다 속단해서 경거망동하던 자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루터가 환속한 수녀와 결혼한 문제, 수도원을 개인 저택처럼 사용한 문제들, 그의 동지들과 제자들이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킨 문제들을 들어 루터는 결국 ‘좁은 길’을 저버리고 ‘넓고 편한 길’을 가다가 우울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김 신부님의 견해가 가톨릭 전체의 것은 아니요 대부분의 가톨릭 교인들의 개신교에 대한 평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닐 것 입니다. 아니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혀 루터의 삶에 그러한 부분이 없었다고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루어낸 업적을 너무 정치, 경제적 시각만으로, 신비주의적 관점으로만 보는 것은 큰 아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왜 루터가, 그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이 오늘의 가톨릭 신부님께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한 일년 전인가요? 감리교 신문 기사에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이라는 꼭지의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현재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중 다른 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약 4백20만 정도가 있는데 그 가운데 불교인이었던 사람이 34.4% 천주교인이었던 사람이 14.9% 개신교인이었던 사람들이 45.5%나 된다고 합니다. 또한 지금 아무런 종교 생활을 하지 않지만 한때 종교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960만인데, 그 가운데 불교인이었던 사람은 26.2%, 천주교이었던 사람은 13.3%이지만 개신교인이었던 사람은 58.6%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사항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데요, 비 종교인들이 각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불교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37.4%, 천주교를 좋게생각하는 사람이 17% 개신교를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13%로 가장 낮았다는 것입니다.

한국 땅에서 개신교는 점점 그 맛을 잃어가고 있거나 그 본질이 변질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개신교의 이러한 상황과 김 신부님이 루터를 일방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며 그 가치를 폄하하는 것과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곧 행위의 부재가 될 수는 없다.
미친 버스 운전사 같은 히틀러의 그릇된 리더쉽에 극렬히 저항하며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본 회퍼 목사는 [나를 따르라]는 글에서 ‘값진 은혜’와 ‘값싼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값진 은혜란 예수에 대한 뒤따름을 요구하는 은혜이고 싸구려 은혜는 뒤따름의 복종과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 은혜입니다. 독일 민족주의를 부추세워 민중을 오도하던 히틀러에 전적인 동의를 보이던 독일교회는 철저한 자기 헌신과 부정을 통해 이르는 예수 따름의 길을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믿음의 구원과 그와 연관된 은혜만을 구했던 것입니다.
루터는 본래 금식과 기도와 헌금과 같이 종교적 행위를 강조하던 카톨릭에 반대해서 믿음으로 이르는 구원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행함’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루터는 라틴 성경의 독일어 번역에만 힘쓴 것이 아니라 여러 성경도 주석하였는데 그는 행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야고보서에 대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라며 그 가치를 폄하하였다.
그러한 지적은 루터 당시에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말이었는지 몰라도 오늘의 자리에서는 분명 재고 되어야 할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는 믿음과 종교적 행위를 너무 멀리 분리해 놓고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믿으면 됐지 더 무엇이 필요하냐며,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는 믿음 속에 안주한채 값싼 은혜에 만족하며 자기 희생과 헌신과 봉사를 강조하는 값진 은혜의 영역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작년 이맘때 존경하던 선배 목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양재성 목사님이 사무총장으로 수고하시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 사무총장으로 오시기로 하시고서는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하신 채희동 목사님이십니다. 그 채희동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2주전이 종교개혁주일이었는데 그날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사님께서 병원에 계신 집사님을 심방가셨는데 그 집사님과 같은 병실에 계시던 한 할머니가 목사라는 양반이 심방 온 것을 알고는 혼잣말로 계속 무엇인가를 중얼거리시더랍니다. 그래 자세히 들어봤더니, 그분은 42세에 남편과 사별하여 혼자 6남매를 키웠는데, 고생하여 키운 자식들이 늙은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채 목사님의 마을을 더 아프게 한 것은 그 뒷 이야기 였습니다. 그 자녀들중에 큰 아들은 당신이 입원한 뒤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고 전화만 했는데 ‘어머니 교회에 꼭 나가세요. 제발 교회 다니세요’했더라는 겁니다. 그 이야기 끝에 할머니는 목사님께 한마디 하셨답니다. “도대체 목사님, 자식 도리 제대로 못하면서 교회 다니면 무엇합니까? 교회라는 곳이 그런 곳이라면 제가 왜 갑니까?”

오늘의 교회는 말은 한 참 앞서 가는데 몸이 뒤따라 오질 않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는 있고 말도 잘 하는데 손발은 기형적으로 짧습니다. 사람도 그의 말살이와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참으로 씁쓸한 맛이 납니다. 오늘의 한국 개신교회는 그런 씁쓸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요?

몸부림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초고속카메라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촬영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화살을 쏘면 화살이 어떻게 날아갈까요? 쭉 일직선으로 날아갈까요? 아니면 물고기가 헤험치듯이 꾸불꾸불 날아갈까요? 화면을 자세히 보니 궁수의 손을 떠난 화살은 한 마리의 미꾸라지처럼 구불거리며 힘겹게 과녁으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자꾸 두 번 세 번 다양한 각도에서 그 화살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맘이 찡했습니다. ‘아 저 화살 하나도 자신이 가야할 목표에 이르기 위해 저렇게 몸부림 치며 노력하는구나. 궁수의 손을 떠난 화살이 절로 과녁에 가서 꽂히는줄 알았는데. 바람의 저항과 싸우고 중력과 싸우느냐 몸을 저리도 떨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구나. 화살아 고맙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소위 사도권을 베드로에게 맡기신 이유가 여럿 있겠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베드로는 다른 이들처럼 말이나 마음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라 몸이 앞서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베드로는 밤바다를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그 누구보다 먼저 바다에 발을 내려 놓았던 사람이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 계신 것을 보고 고깃배에서 그냥 물로 뛰어들었던 사람입니다. 참으로 베드로는 말부림보다는 몸부림이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런 몸부림을 높이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루터 이후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개신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몸부림보다는 말부림 혹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로 대표될 수 있는 마음 부림에 큰 비중을 두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우리들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말과 마음의 변화만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을, 삶의 변화란 결국에는 내 몸이 바뀌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변화의 물결이 마음과 말의 차원을 뛰어넘어 내 손과 발을 움직이고 표정까지 바꾸어야 참된 변화임을. 그리고 그 삶이 공동체성을 띤다면 변화의 문제는 더욱 몸의 문제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오라고.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라고.

욕망을 따라가던 몸부림을 멈추고, 그런 나를 부인하고 예수를 따라가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들이 됩시다.

등 록 날 짜 2005년 10월 30일 12시 09분 4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