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7. 지구 사랑 로그인
설교자 김기석
본문 창1:9-13
설교일시 200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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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사랑 로그인
창1:9-13
(2006/4/2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고, 씨를 맺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나게 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 진흙소를 타고 대양을 건너다
아름다운 4월 아침입니다. 저는 지난 목요일 횡성교회에 다녀왔습니다. 한성모 전도사와 정애성 전도사의 목사 안수를 보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날이었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야는 아름다웠습니다. 진달래와 벚꽃 그리고 생강나무 꽃이 어울리게 피었고, 잎 작은 활엽수들이 피어내는 연둣빛 새싹들은 빛 그 자체였습니다. 먼 빛으로나마 그런 산색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색깔은 초록이라는 천상병 시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22일은 제 36회 <지구의 날>이었습니다. 지구의 날 사무국은 올해의 주제를 <지구 온난화 로그아웃, 지구 사랑 로그인>으로 정했습니다. 컴퓨터 시대다운 주제네요. 이런 주제는 지구가 처해 있는 절박한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 것일 겁니다. 화석 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고, 그 때문에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봄에도 폭설이 내리고, 지구의 어느 지역에는 여러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습니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전세계적으로 900만 평방 킬로미터가 사막화되었고, 현재는 최소한 20만 평방 킬로미터가 매년 사막으로 변하고 있답니다. 지구의 0.1%가 해마다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날씨가 미쳤다고 하는데, 이게 다 자업자득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분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진흙으로 만든 소를 타고 대양을 건너는 격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가지 못해 진흙소는 다 풀어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제 지구의 부존자원이 고갈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기름값이 조금만 올라도 우리 경제에 먹구름이 낀다고 야단인데, 석유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유가상승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70년 대 초반부터 들어왔던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에 중독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마녀 키르케의 노랫소리에 끌려 해안으로 접근하다가 난파당하는 배들처럼 우리들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섬뜩합니다. 잘 살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하지만 문제는 ‘만족하게’를 뜻하는 부사 ‘잘’이라는 단어의 의미규정입니다. 잘 사는 게 어떤 것이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말을 너무 물질적으로, 또 계량적으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수입이 얼마나 되나, 이게 온통 우리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이전보다는 훨씬 풍요로워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배가 고픕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 나발의 잔치
가끔 우리의 현실이 답답해 한숨지을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나발입니다. 그는 자기의 부유함에 도취되어 세상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양떼를 지켜준 댓가를 좀 달라는 다윗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부합니다. “도대체 다윗이란 자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요즈음은 종들이 모두 저마다 주인에게서 뛰쳐나가는 세상이 되었다”(삼상25:10). 그는 온갖 말로 다윗을 모욕합니다. 부하들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다윗은 분기탱천하여 부하들에게 무장을 명하고 나발을 응징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이제 얼마 후면 처절한 살육이 벌어질 판입니다. 그런데 그때 나발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자기 집에서 왕이나 차릴 만한 술잔치를 베풀고, 취할 대로 취하여서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비극을 막은 것은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입니다. 그 지혜로운 여인은 음식을 넉넉하게 마련하여 다윗이 부하들이 이끌고 내려오는 길목에 나가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다윗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결국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사람인데, 분기에 못 이겨 어리석은 자의 집안에 피의 보복을 가한다면 훗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간곡한 말로 설득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받아들이고 부하들을 물리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다윗이 다녀갔다는 말을 들은 나발은 충격을 받고 열흘 후 죽고 맙니다.

나발의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 살았던 한 어리석은 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몽롱하고 혼곤한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이들이 필요합니다. 덜 먹고, 덜 쓰면서도 행복한 삶의 방식을 개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을 아름답게 보존하고 돌볼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성경의 첫 마디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이 한 마디는 우주 삼라만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선포인 동시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존재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나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주의 탄생은 신비입니다.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이 조금씩 밝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우주가 탄생한 까닭을 밝힐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과학이 멈추는 지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서 기자의 말은 타당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전3:11).

• 우주의 춤
나는 가끔 창조 묵상을 합니다. 창조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입니다. 시간을 뜻하는 빛의 창조로부터, 공간의 창조라 할 수 있는 궁창을 나누는 장면, 그리고 바다로부터 구별된 땅 위에 초록색 움이 돋아나는 장면, 해와 달과 별들이 질서있게 운행하는 장면, 바다와 공중과 땅 위에 온갖 동물들이 생겨나 즐겁게 움직이는 장면, 그 후에 지각생인 듯 맨 나중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까지를 그리다보면 내가 이 거대한 우주에 속해 있는 존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저자인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자기가 경험한 우주의 춤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늦여름의 어느 날 하오,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나는 그때 수 많은 입자들이 창조와 파괴의 율동적인 맥박을 되풀이 하면서 외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에너지의 폭포를 ‘보았던 것이다’.(<<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이성범 역, 범양사, 1987, 15쪽)

그는 원소들이 춤을 추는 것을 보았고, 느꼈고,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 거대한 세계가 하나님의 몸임을 자각하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에스겔이 보았던 해골골짜기에 하나님의 바람이 불어오자 해골들은 일어나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드럽고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으실 때 대지는 깨어나고 잠들었던 생명들은 일어납니다. 그 때를 가리켜 우리는 봄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차가운 숨결을 불어넣으시면 대지에 있는 것들이 숨을 죽이고 깊은 잠에 들어갑니다. 이게 겨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이런 질서와 리듬을 부여하셨습니다. 질서를 뜻하는 단어 ‘cosmos'는 동시에 우주를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질서있게 창조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몸을 소우주라고 합니다.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기가 막힌 신비입니다. 우리 몸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질서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고 계십니다. 이 상반되는 두 가지를 신학자들은 초월과 내재의 통일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한히 초월하는 분이시지만, 이미 우리 속에 계신 분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래서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 And a Heaven in a Wildflower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들어라 And Eternity in an hour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t> 제1연)

• 영적인 전사가 되라
우리가 사는 땅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아무리 담을 쌓고 철조망으로 두르고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해도 우리는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사람들일 뿐, 땅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민35:34)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땅은 세속적인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거룩한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땅을 함부로 훼손하며 그것을 발전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늘어나니 댐도 만들어야 하고, 산을 파헤치기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최소의 행위에 그쳐야 하는 것입니다.

<지구의 날>을 하루 앞둔 4월 21일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구사랑에 로그인 하자는 캠페인이 벌어지는 한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국토의 면적이 늘어났다고 좋아합니다. 갯벌을 매립해 얻는 땅은 서울시 면적의 2/3이고 이것은 여의도 면적의 140배랍니다. 엄청납니다. 사람들은 새만금을 인간의 위대함의 증거로 삼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이게 또 다른 바벨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는지 지켜보고, 찬탄하고, 그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조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이데거는 현대인의 기술을 닦달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즉 인간의 기술이란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에너지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양계장에서 키우는 닭들은 환하게 밝혀진 불빛 아래에서 시도때도 없이 알을 낳아야 하고, 소들도 비좁은 사육장에서 꼼짝달싹 못하면서 등심 부위를 키웁니다. 거위들은 고무호스를 통해 강제로 주입되는 사료를 먹으면서 그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간을 키웁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맛있게 먹습니다. 생각해보면 끔찍한 세상입니다.

이제는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할 수 없다고도 말하지 마십시오. 문명이 한 순간에 변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한 사람의 변화는 세계 변화의 시작입니다. 밥을 한 두 숟가락 덜어내고 먹으면 속이 편한 것처럼, 욕심을 덜어내면 뜻밖의 기쁨이 찾아옵니다. 멈추어 서고, 경탄할 줄 모르는 것이 우리의 병입니다. 우리가 사는 땅은 하나님이 복 주신 땅입니다. 그 땅을 회복시키는 것은 부름받은 우리의 소명입니다. 주한 미군이 우리에게 반환하는 땅들의 오염이 심각하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사코 환경개선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무책임하고 오만한 태도입니까. 기독교인들은 지구를 지키고, 아름답게 보존하기 위해 영적인 전사(warrior)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상 소집 나팔소리는 이미 울렸습니다. 그 부름에 응답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6년 04월 23일 12시 14분 5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