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송구영신. 새날이 열린다
설교자 김기석
본문 사43:18-21
설교일시 2006/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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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날이 열린다
사43:18-21
(2006/12/31, 송구영신예배)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들짐승들도 나를 공경할 것이다. 이리와 타조도 나를 찬양할 것이다. 내가 택한 내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 물을 대고, 사막에 강을 내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 신뢰의 붕괴
이제 잠시 후면 2006년이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회한 없이 한 해를 돌이켜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눈가에 어리는 물기를 거두어들이고 찬찬히 우리 삶을 반추해 볼 시간입니다. 지금도 티벳 사람들은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풍장風葬한다고 들었습니다. 자기의 몸뚱이를 새들에게 주고 바람에 씻겨 백골만 남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제 감상을 버리고 2006년을 풍장해야 할 때입니다. 참 소란한 한 해였습니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대중들의 열광에 부응하려다가 기어코 거짓을 지어내 몰락에의 길을 걸었던 한 사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잊을 길이 없습니다. 세상과 소통할 길이 막혔던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함으로 세계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마침내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동산 광풍은 대다수의 가난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를 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그 광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AI(avian influenza,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닭과 오리 수백만 마리가 살처분되어 땅에 묻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문명의 바탕이 생명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증오는 또 다른 증오를 낳고 있아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싸움은 너무나 파괴적입니다. 마치 무저갱의 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유럽의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갈등이 심화되어 세계는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한국개발연구원의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기본조사 및 정책 연구’ 최종 보고서가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통계는 우리 사회의 신뢰의 기반이 무너졌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의심이 우리 삶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한국전쟁과 급속한 도시화, 권위주의적 근대화 등을 겪으면서 불신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되면서 우리 사회의 신뢰가 붕괴된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과연 이 일이 가능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어려울 거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이 물음을 남겨두고 본문으로 가보겠습니다.

• 아파하시는 하나님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민’이라 자부했던 자기들이 겪고 있는 그 암담한 현실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참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그들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통을 겪는 것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 고통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얻어맞고 조롱을 당하고 있는데, 바빌론은 실컷 나쁜 짓을 하면서도 자신만만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고통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백성을 구원하실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 질문 끝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이 하나님의 길이 인간의 길보다 높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언자는 이제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무정한 분도, 무능한 분도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동안 하나님은 자제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제 정신을 차리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마침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시고 당신의 능력과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사42:14)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차마 더는 볼 수가 없어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과 무관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 태에서 난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어머니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다시 불러들이겠다.
분노가 북받쳐서 나의 얼굴을 너에게서 잠시 가렸으나
나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에게 긍휼을 베풀겠다.
너의 속량자인 나 주의 말이다.(사54:7-8)

• 희망의 뿌리
우리에게 희망의 뿌리가 있다면 그것은 좋으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제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뿌리가 살아있으면 식물은 죽지 않습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싹을 틔워내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 않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새해가 된다 해도 사람들의 모둠살이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분열의 파열음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만한 바빌론에 군대를 보내 그 도성을 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바다 가운데 길을 내고, 거센 물결 위에 통로를 내고, 제국의 군대를 꺼져 가는 등잔 심지처럼 꺼버렸던 출애굽의 경험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먼 과거를 상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지나간 일을 기억하려고 하지 말며, 옛일을 생각하지 말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이 일이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18-19)

앞길이 보이지 않아 울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신뢰의 토대가 무너진 우리 사회를 보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민족’이라며 자조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계십니까? 이제 한숨을 거두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일에 동참할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한 점 등불이고자 하는 사람,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노래를 부를 사람, 모두의 마음이 팍팍해지는 세상에서 여전히 부드러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 모두가 자기 생각에 골똘할 때에도 다른 이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는 사람….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공에 집착하고, 욕망 충족을 삶의 우선순위의 맨 앞에 놓고 살면 양심은 휴면상태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교우들 모두가 영의 양식을 얻기 위해 마음 쓰며 사는 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외감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 삶은 욕망의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지금 우리 앞에는 새로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은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어진 시간입니다. 새해 여러분이 정해놓은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믿음을 가진 이들의 삶의 목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꿈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 순간 하나님께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여쭈어보아야 합니다. 다가올 시간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삶의 목표가 분명하다면 우리는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름에 언제든 ‘예’라고 응답할 준비를 갖추고 사십시오. 바쁘다는 핑계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핑계로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거절하고 싶은 그 일이야말로 우리를 하나님께 더욱 굳게 비끌어매는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큰 일은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새해에는 우리 모두 은밀한 소망 하나를 품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누군가의 굳은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도록 하는 것, 굳게 닫혀 있던 누군가의 마음을 사랑과 정성으로 여는 것입니다. 이 마음으로 살면 우리는 새로워질 것입니다. 세상에 열리지 않는 벽이란 없습니다. 아직 문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새해 삼백 예순 닷새 내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생명의 기적을 깊이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삶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에게 고진하 목사가 들려주는 시 한편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대가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그대의 밤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 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읜 순결한 사랑이
아침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지니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고진하,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라고 지음받은 백성입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좋으심을 세상 앞에 드러내고,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소명으로 행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7년 01월 06일 23시 33분 2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