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 입춘에 하는 다짐
설교자 김기석
본문 갈6:6-10
설교일시 2007/02/04
오디오파일 s070204.mp3 [6361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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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에 하는 다짐
갈6:6-10
(2007/2/4)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 법보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사도는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입니다. 그는 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뿐입니다. 바울은 성령 안에서의 삶에 대해 말하면서 그것은 형제자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배려의 삶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 끝에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말씀이 전에는 그리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저의 입장에서 이 구절을 가지고 설교한다는 게 왠지 옆구리 찔러 절 받기가 아닌가 싶어 일부러 외면하던 본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인생의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제라도 찾아가 기댈 수 있고, 그분을 거울삼아 나를 비춰볼 수 있는 스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금 철이 드는지 저는 요즘 나이가 많든 적든 제게 어떤 깨달음을 주는 이들과 만나면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스님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나 물품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베푸는 것을 가리켜 보시(布施, dana)라고 합니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수행법의 하나입니다. 내가 공덕을 행한다는 의식조차 없어야 참 보시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하자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보시 중에 가장 큰 보시는 뭘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이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일 겁니다. 우리 삶이라는 게 온통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것임을 깨우쳐주는 것, 우리의 고질병인 욕심에서 해방되도록 깨우쳐주는 것, 이보다 귀한 보시는 없습니다. 남을 깨우치는 가르침을 내놓는 것을 일러 ‘법보시’(法布施)라고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우리에게 참 삶의 길을 가리켜 보이는 이들과 좋은 것을 나누며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가끔 후배들에게 요즘 깨달은 바를 좀 나눠달라고 청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목마르기 때문일 겁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이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있을 때 그의 영혼은 진리의 집에서 멀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 들어 도시의 교회들이 너무 삭막하게 변했다고 한탄합니다.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이제 끝났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기능인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범속성에 빠지기 쉬운 우리 삶을 자꾸 초월의 빛 앞에 세우는 이들입니다. 그들을 진심으로 존중할 때 우리의 정신도 자랄 수 있습니다.

• 서둘러 돌아오시게
7절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이 말은 자기가 뭐라도 된 줄로 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기기만보다 우리를 진리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진리에 어중간(於中間)은 없습니다. 신앙은 결단입니다. 결단이란 끊어야 할 것을 단연코 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은 신앙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빌3:8b).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은 비슷하지만 아닌 것, 곧 似而非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이비 신자인지 아닌지를 뭘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어디에 씨를 뿌리며 사는지를 보면 됩니다. 좀 쉽게 말하자면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물질과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그가 참 신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을 크게 두 종류로 가르고 있습니다. 자기 육체에다가 심는 사람이 그 하나이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이 그 둘입니다. 육체에다가 심는다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온통 마음이 팔린 채 사는 사람일 겁니다. 그를 움직이는 기본 동기는 ‘욕망’입니다. 우리가 경험해봐서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욕망은 만족을 모릅니다. 잠시 충족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욕망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욕망에 따라 사는 사람은 바위산 위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의 운명을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자기 육체에다가 심는 자는 썩을 것을 거둘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늘 하나님의 뜻을 우선적으로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를 움직이는 기본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져오시는 성령을 사모하며 삽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지금의 현실을 넘어 종말론적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미래에 동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말은 항상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놓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바친다는 말일 겁니다. 굶주린 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 차가운 겨울바람 앞에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손과 발이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무너진 피조세계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평화가 깨진 세상을 자신의 온몸으로 부둥켜안아 새롭게 하려는 평화의 벗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에다가 심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들은 영생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옛 노래 한 수가 떠오릅니다.

久在塵勞中(그대 오랫동안 풍진 세상살이 하느라)
昧却本來事(본래 일, 다 잊지 않았는지?)
早早收萬行(어서 어서 온갖 잡사 다 걷고)
速還靑山來(서둘러 청산으로 돌아오시게)

이 풍진 세상에 속아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는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까맣게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돌아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바람을 타고 춤추며 살아야 합니다.

• 절망에 맞서는 힘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성령의 바람을 타고 씨를 뿌린다고 뿌렸는데도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일쑤 실망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이 믿음에 기초한 것이 분명하다면 결과에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맥락이 다른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것이지만,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주님께서 하신다”(잠16:1). 그렇다면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비결은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은 낙심할 수 없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매일 매순간 되풀이되는 질문!
그때마다 용감하게
“당신은 저의 전부!”라고 말씀드렸지만
한번도 저의 전부가 되어보신 적이 없으신
주님!
남에게 투명하지 못하다고 불평하면서
실상 제 자신이 불투명합니다.
목적을 잃고 고장난 배처럼 헤매지만
어둔 밤에도 저를 이끄실 수 있는
빛이신 주님!
지금 저는 제 자신과의 투쟁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가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잠겨 방황하는
제 자신을 통째로 드립니다.
(김현옥, <그대를 찾아나서면> 중에서)

우리가 고단한 인생길에서 낙심하지 않고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어둔 밤에도 우리를 이끄실 수 있는 빛이신 주님께로 부단히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의 지혜와 섭리 앞에 맡길 때 우리는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절망에 맞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쳐 제풀에 넘어지지 않는다면,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결코 허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확신이 있기에 저는 결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 선을 행하는 법
이제 바울은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도 감리교도들에게 이것을 권고했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에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오래오래.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을 위해 내가 이렇게 정성을 바칠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사람도 하나님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물론 배고픈 사람은 먹여야 하겠고, 헐벗은 사람은 입혀야 하겠지요. 소외된 사람의 벗이 되어주는 것도 소중한 일입니다. 이런 일차적이고 긴급한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리워져 있는 그의 가치를 발견하고 격려해주는 일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이 일에 명수이셨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눈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믿음의 식구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쩌면 우리가 선한 삶을 연습하는 곳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절기상으로 입춘입니다. 겨울의 한복판에 하나님은 봄의 푯말을 세워놓으셨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땅 속의 뿌리들은 일할 채비를 하고 있고, 가지들도 기지개를 켜며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일에 치여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며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오늘을 기해 우리의 다짐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육체를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새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이 식어버린 역사의 겨울이 아직 계속되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선을 택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봄을 선구하는 이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7년 02월 04일 12시 42분 4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