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8. 우리 마음은 어디에?
설교자 김기석
본문 마6:19-21
설교일시 2007/5/6
오디오파일 s070506.mp3 [22377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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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은 어디에?
마6:19-21
(2007/5/6)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며,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간다. 그러므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좀이 먹고 녹이 슬어서 망가지는 일이 없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 13인의 아해
오늘은 우리 교회의 설립 99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주셨습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 속의 교회는 오류투성이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 교회를 통해 당신의 일을 해오셨습니다. 교회는 힘과 풍요를 누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 질서와는 다른 질서에 속해 있습니다. 지배의 자리에 섬김과 돌봄을, 풍요의 자리에 나눔과 절제를 세우는 것이 교회의 교회됨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교회는 언제나 세속의 바다에 떠있는 외로운 섬과 같습니다.

돈이 곧 권력이고 사람값이 되는 세상입니다. 한화 그룹 김승연 회장 부자가 저지른 보복폭행사건이 연일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회적 절차를 무시하고 보복폭행을 저지르는 그 행위의 이면에는 돈과 권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깔려있습니다. 돈과 권력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그들의 경험철학이 이 사건의 배후에 놓여있습니다. 그들은 경찰에도 압력을 가하고, 그룹 차원의 대응책도 마련했습니다. 전경련의 부회장인 어느 인사는 이 사건은 “아들이 맞고 와서 아버지가 대신 때린 단순한 사건” 아니냐며 언론이 이 사건을 너무 부풀린다며 불퉁거렸습니다. 게는 가재 편이어서 그런가요? 이분들은 張三李四가 모여 사는 세속의 질서 저 너머에 계신 분들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권력과 돈이 사람을 얼마나 뻔뻔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봅니다. 그러니 ‘억울하면 출세해라 출세를 해라’는 노래가 나오는 겁니다.

한국인을 상대로 일해 본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물으면 대개 비슷한 대답이 나온다고 합니다.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애쓰는 사람, 대부분 일을 열심히 하지만 물불을 안 가린다.’ 이것을 한국인의 역동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본다면 그것은 제 논에 물대기(我田引水)일 뿐입니다. 한국인은 이제 유대인이나 일본인을 대신하여 ‘경제적 동물’로 변했다는 빈정거림이 도처에서 들려옵니다. 성형 수술 공화국이라는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질 만큼 가졌는데도 얼굴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1930년대의 시인 이상의 <오감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고있소/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하략)”. 이게 우리 삶의 정황이 아닌가 싶습니다. 돈을 향해 질주할수록 내면은 가난해지고 불안감은 커지게 마련입니다.

• 하늘에 쌓은 보물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암암리에 통용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전혀 새로운 메시지 앞에 서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다가 쌓아 두지 말아라.” 이 말씀은 조금 불편합니다. 돈이 힘이 되는 세상인데, 그래서 물불가리지 않고 일 해 부자가 되고 싶은 게 우리 마음인데, 주님이 그 마음을 알아주시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땅에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고 도둑이 와서 훔쳐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고비용을 치르면서 살고 있습니다. 외모가 경쟁력인 세상이니까 얼굴과 몸매를 뜯어고치는 데도 돈이 들고, 명품도 몇 개쯤은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도 구해야합니다. 호텔에 가도 차를 보고 사람대접을 달리 하니 좋은 차도 구입해야 합니다. 신제품들은 왜 그리도 빨리 나오는지요. 최신형 휴대전화도 구입해야 하고, 가전제품도 고치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복한가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욕망이 충족되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숨은 더욱 가빠지고, 이웃들과 우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아갈 시간은 사라집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삶의 굴레로부터 내려오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그것을 하늘에 쌓는 길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보물을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라면 모를까 하늘에 쌓으라니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일부 몰지각한 목사님들은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 게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시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일부 목회자들은 밥을 굶을 지경인데, 도시에 있는 교회들은 점점 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 교회와 부대건물을 짓고, 한적한 곳에 땅을 사 수양관을 짓고, 교회 묘지를 만듭니다. 그런 교회일수록 많은 이들이 모여듭니다.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말구유에 태어나셔서,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살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정말 그런 것을 보고 ‘야 참 좋다’ 그러실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제 배만 불리는 거짓 목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요청 앞에 서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커다란 교회를 보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주변에 굶주리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 교회 옆에 있는 신광여고에도 급식비를 낼 수 없는 형편의 아이들이 여럿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교회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은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로 떠돌고 있는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그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듬어 안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존재 이유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그리하면 네게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눅14:14)

100주년을 향해 가는 우리 교회가 더욱 확고하게 붙잡아야 할 가치는 고통 받는 이들과의 연대입니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 곁에 더욱 다가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더욱 낮아져야 합니다. 오염된 물 때문에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생각해 우물을 기부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캄보디아에서는 물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랍니다. 그만큼 물 사정이 나쁘다는 말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고 우리 청파의 교우들은 보물을 하늘에 쌓는 기쁨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 대량학살의 시대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하는 이유를 주님은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돈 지갑이 회심하기까지는 진정한 회심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돈과 시간과 재능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은 초월적인 빛을 향한 밝음의 지향과 욕망에 따라 살려는 어둠의 지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삶이 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은 압도적인 힘으로 우리를 욕망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물질주의에 투항한 채 숨을 헐떡이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세상은 살림의 대비되는 죽임의 세상입니다.

지난 주중에 김준우 목사님께서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공개강연을 하셨는데 김목사님은 우리 시대를 ‘대량학살의 시대’라고 명명했습니다. 인종간의 갈등으로 ‘종족학살’(genocide)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에서 벌어졌던 참극을 기억합니다. 터키의 쿠르드족이 겪었던 고통도 기억합니다. 이라크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대립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대립하고 있고,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는 인종간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 시대는 ‘종자학살’(biocide)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환경이 파괴되고 기후가 변화되면서 많은 생명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유엔의 정부간 기후변화 위원회(IPCC)는 140개국의 기후관련 학자들과 전문가들 4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방콕에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적 재앙을 막기 위해 2015년을 정점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대폭 감소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2050년에는 2000년 수준의 50-85% 이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기온이 1.5-2.5도가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동식물의 20-30%가 멸종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1억 2000만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매년 1500만 명이 홍수의 피해를 입을 것이고, 32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지구학살’(geocide)이라 말해도 될 것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의 강대국들은 세상 도처에서 분쟁을 조장하거나 방관하면서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정치를 하는 이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그를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분의 마음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셨던 주님은 지금 이 세상을 보며 울고 계실 겁니다. 그 눈물을 닦아드려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10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지붕에 태양광 발전소를 만드는 것은 창조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 삶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이런 일은 에너지 절약형으로 우리 삶을 전환하려는 노력과 병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입이 닳도록 조금 덜 쓰고, 조금 더 불편하게 살자고 여러분을 청했습니다. 이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렇게 사는 게 신앙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상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명의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이 자기 몫의 삶을 충만히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그런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서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생명이라 고백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8년 남았다고 말합니다. 종말의 현실이 눈앞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주님의 꿈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줄 이들을 찾고 계십니다. 평화와 생명의 세상을 열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 일에 나서야 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 했던 이사야의 마음이 우리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배질서는 우리에게 더 많이 편리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덜 갖고 좀 더 불편하게 사는 것을 행복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사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경험을 하나님의 마음이 머무는 곳에 사용하십시오. 그래야 물질의 지배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우려는 이들은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교회 설립 99주년을 맞아 여러분을 이 거룩한 삶으로 초대합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마22:14).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를 믿으십니다. 이 믿음에 부응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7년 05월 06일 11시 58분 0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