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 아름다운 동행
설교자 김기석
본문 행18:1-4
설교일시 2007/06/03
오디오파일 s070603.mp3 [6741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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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행18:1-4
(2007/6/3)

[그 뒤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서, 고린도로 갔다. 거기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바울은 그들을 찾아갔는데, 생업이 서로 같으므로, 바울은 그들 집에 묵으면서 함께 일을 하였다. 그들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을 벌이고, 유대 사람과 그리스도 사람을 설득하려 하였다.]

• 호모 노마드
현대인을 가리켜 호모 노마드(Homo Nomad), 즉 유랑하는 인간이라고 명명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통해 우리는 늘 이동중입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나들고, 삶에 지친 이들은 재충전을 위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집에 앉아 있어도 사람들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세상 도처를 떠돕니다. 호모 노마드들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습니다. 그들은 먼 곳에 있는 누군가와 늘 접속을 시도합니다. 과거에는 한 직장에서 오랫 동안 근무하는 이들이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기 쉽습니다.

지금이야 이동이 용이한 시대이지만 교통 수단이 여의치 않았던 옛날에는 유랑인으로 산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작년 2월 성지순례 때 저는 도시에서 도시로 떠돌며 복음을 전했던 바울 사도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다. 안디옥에 있는 베드로 암굴교회를 보고, 오론테스 강이 유유히 흐르는 안디옥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바울의 출생지인 다소(Tarsus)를 향해 떠났습니다. 우리 앞에는 머리에 백설을 이고 있는 토루스 산맥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리무진 버스도 허위허위 넘는 그 고갯길에서 문득, 바울 사도는 이 길을 걸어서 넘었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 왔습니다. 몸이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길에서 어떤 위험을 만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바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때 긴 여정에 지쳤던 저는 엠피3를 통해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마침 흘러나온 곡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우편에 그늘 되시니
낮의 해와 밤의 달도 너를 해치 못하리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너의 환난을 면케 하시니
그가 너를 지키시리라 너의 출입을 지키시리라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저는 그 노래를 마음으로 따라부르다가, 바울 사도의 마음이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에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기치 않은 성령의 인도로 선교의 지평을 그리스로 확장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의 불모지인 그리스는 성찬을 차려놓고 바울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감옥에 갇혔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들을 피해서 베뢰아로 갔지만 유대인들은 그곳까지 원정을 와서 바울 일행을 괴롭혔습니다. 쫓기다시피해서 내려간 아테네에서의 복음전파는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아무리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던 바울이지만 이쯤 되면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 예비하시는 하나님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했을 때 그는 극심한 마음의 동요를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 때의 자기 마음의 정황을 이렇게 진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고전2:3)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꼭 강철같은 심장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들보다는 때때로 흔들리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이 오히려 주님의 쓰임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바울이 당도한 고린도는 그리스 남부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고린도는 주전 146년에 로마의 루시우스 뭄미우스(Lucius Mummius) 장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전 46년 경에 율리우스 씨저(Julius Caesar)에 의해 재건된 이후 바울이 이곳에 당도했을 무렵에는 무려 60-70만명의 주민이 사는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당시의 인구 밀도를 생각해보면 고린도가 얼마나 큰 도시인 줄 알 수 있을 겁니다. 아테네가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다면 항구 도시였던 고린도는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는 여신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에는 무려 1,000명이나 되는 창녀 겸 여사제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각지에서 돈이 모여들고, 신전 창녀들이 들끓는 그 도시에서 바울은 무슨 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암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어떤 일을 시키실 때면 꼭 그 일을 돕는 이를 보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도시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본도(Pontus, 터키 북부의 흑해 연안 지역) 출신인 아굴라는 일찍이 로마로 이주해서 천막짓는 일을 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글라디우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으로 유대인들이 로마를 떠나야 했을 때 그들 내외도 고린도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큰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왜 고린도를 택했을까요? 대도시였으니 일감이 많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겠지요? 하지만 그들의 이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이 사실은 필연일 때가 많습니다. 랍비 교육을 받을 때 천막 기술을 배웠던 바울은 이미 복음을 영접했던 그들 내외의 집에 머물면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라는 낯선 도시와의 접촉점은 그렇게 마련되었습니다. 그는 주중에는 천막 만드는 일을 하고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 가서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노동과 선교를 병행하다가 나중에 실라와 디모데가 당도한 뒤에는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렀습니다.

• 동행의 법칙
바울이 또 다른 선교지인 에베소를 향해 떠날 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동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복음 전도자인 바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 위해 자기들의 삶의 터전을 또 다시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였던 것입니다. 비상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이제 밥벌이가 아니라 복음전파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살았습니다. 그들 부부는 에베소에 온 아볼로라는 사람을 데려다가 복음의 진수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미 깊은 학식과 기독교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내적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그를 도와 하나님의 종으로 바로 세웠던 것입니다. 나중에 바울은 자기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에 그들 부부를 감사함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들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의 모든 교회도 그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롬16:3-4)

바울은 그들 부부를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기를 위해 생명의 위험도 무릅썼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동행이 있으니 말입니다. 복음의 대의를 위해 삶의 안일을 버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바울과 만난 후 그들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든든한 동행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하나 되어 한 길을 걸어가는 벗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여러분에게는 이런 동행이 있습니까?

이오 이현주 목사님은 40년 지기인 김동완 목사님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가 그 자리에서 <동행의 법칙>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왼손은 왼손
오른손은 오른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왼손은 왼손의 길을 가고
오른손은 오른손의 길을 가거라.
그러나
따로 놀아서는 안 된다.
사실은
따로 놀 수도 없는 신세다.

일을 할 때에
작은 일 따위는 각자 알아서 하되
무거운 항아리를 들 때에는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도 맞잡지는 말아라.
두 손을 맞잡고서는
아무 일도 못한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일 말고는!

왼손은 왼손의 길을 가고, 오른손은 오른손의 길을 가지고 따로 놀지는 않는 것, 일을 할 때는 각자 알아서 하지만 무거운 항아리를 들 때는 함께 힘을 모으는 것, 바로 그것이 이오 목사님이 생각하는 동행의 법칙입니다.

• 지금 누구의 동행이 되어 걷고 있는가?
실의에 잠겨 예루살렘의 서편에 있는 엠마오를 향해 가던 두 사람은 길 위에서 낯선 나그네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동행이 그들의 삶을 뒤바꾸어놓았습니다.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재정 관리인이었던 내시는 광야에서 빌립과 동행이 되었다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동행이 있으십니까? 삶이 제 아무리 힘겨워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14:18) 하신 분이 우리의 동행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희망의 뿌리입니다.

주님의 동행이 된 사람들은 누군가의 동행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이 나로 인하여 진리의 길을 바르게 걷고 있습니까? 함께 길을 가는 그의 얼굴이 밝아지고, 마음에 산들바람이 부는 것처럼 행보가 가뿐하다면, 나는 그의 좋은 동행입니다. 지난 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우리 교회에서는 장애인들을 돕는 코디네이터들에 대한 교육이 있었습니다. 가 주최한 모임이었습니다. 저는 그 단체의 사무총장이신 박정자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맑아짐을 느낍니다. 그는 몸이 자유롭지 못한 이들의 절친한 벗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가 있어 많은 장애인들이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그의 환한 얼굴은 그의 내면에 있는 기쁨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누군가의 동행이 된 사람, 그것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 효율을 숭상하는 세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는 사람, 장애인들… 이런 이들의 동행이 된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의 첨병들입니다.

저는 지난 일년 동안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이 연재한 <팔레스타인과의 대화>를 꼼꼼하게 읽어왔습니다. 팔레스타인 작가들과 한국의 작가들은 편지 형식의 글을 통해 서로의 아픔과 문화 그리고 꿈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편지에서 자카리아 무함마드는 한국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길이 이미 닦여졌으며 많은 이들이 그 길을 따라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다움과 우정이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는 세상을 열기 위해 한국의 작가들과 팔레스타인 작가들은 동행이 되었습니다. 동행, 그것은 희망입니다. 나 홀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지금 배고프고, 목마르고, 병들고, 헐벗고, 옥에 갇히고, 세상을 이방인처럼 떠도는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은 당신의 동행이 되어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동행이 되어 주시어 우리 삶은 든든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동행이 되어드려야 합니다. 누군가의 동행이 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 희망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특히 고통받는 이들의 동행이 되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호모 노마드로 이 세상을 걷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어 바울은 마음이 든든했던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삶에 든든한 동행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7년 06월 03일 12시 28분 0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