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3. 지구와 이웃하기
설교자 양재성
본문 눅10:25-37, 창1:31
설교일시 2007/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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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이웃하기
누가복음 10장 25-37절, 창세기 1장 31절.

6월 항쟁과 기독교
오늘은 우리나라 현대사의 위대한 분기점인 6.10 혁명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87년 1월, 민족의 아들인 서울대학교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고문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독재 권력에 의한 살해 사건의 마각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분노하였습니다. 급기야 6월 9일, 연세대학교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발포한 체류탄 파편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국민들은 이한열 열사를 죽인 독재태도를 외쳤고 이한열 열사가 희망했던 민주화를 열망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어지는 시위로 노태우씨는 6.29 항복 선언을 하였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장례는 7월 9일,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고 연대를 떠나 이대를 넘어 광화문, 시청 앞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100만의 군중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불이 내려와 민중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급기야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고 더 이상 독재는 안 된다는 사회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화시대를 연 6월 혁명의 중심축엔 기독교회가 있었습니다. 재야 운동가인 고 계훈제 선생은 기독교가 아니었으면 6월 항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회고하였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민족의 고난마다, 새로운 시대를 열 때마다 기독교회가 있었습니다. 개화운동이나 독립운동은 그 중심이 기독교회였고 교육운동과 농민운동, 물산장려운동과 신민회 등 민족을 위한 비밀결사체들에 기독교회가 깊이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고아원과 병원사업 등 복지운동에 참여하였고 성경과 찬송가 보급으로 한글 지키기 운동을 필친 것도 기독교회였습니다. 여성운동과 평등운동에도 기독교회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역사의 현장에서 유배되었습니다. 20년 전 기독교회는 6월 전사들의 무용담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정 하늘의 불은 꺼져가고 있습니까?

예수의 비유 / 이웃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가 강도를 왜 만났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강도만난 사람들은 꼭 무엇을 잘 못했기 때문이라는 인과의 원리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요지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소지품을 다 빼앗기고 죽도록 얻어맞아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시급합니다. 강도만난 사람에겐 이웃이 필요했습니다. 우선적으로 그를 치료하고 돌보고 품어줄 이웃이 절실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죽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에게 제사장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무슨 연유인지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종교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종교인이 되었을지는 모르기만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로 레위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도 무슨 연고인지 그냥 지나쳤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피치 못할 사정이 그를 진정한 기독교도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도만난 사람을 보자마자 측은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름을 부어 치료해 주고 자신의 나귀에 그를 태우고 가까운 여관으로 가서는 그를 더 돌보아주었고 다음날 여관 주인에게 돈을 건네면서 잘 돌보아줄 것을 부탁하였고 돈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려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너는 누구의 이웃이냐?
오늘 이 본문의 요지는 무엇입니까?
세상은 율법학자처럼 『누가 내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너는 누구의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지금 강도 만난 자들은 이웃이 필요합니다.
탄식하는 지구 생태계에겐 이웃이 필요합니다.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무너짐이 크리라는 예언을 듣고 있을 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의 이웃입니까? 이웃하기가 기독교 복음의 핵심임을 모르십니까?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너는 누구의 이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그냥 지나친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을 탓하시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된 사마리아 사람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는 가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겐 따뜻한 가슴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엔 불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불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의 자리가 참 인간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이며 기독교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인간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사마리아인의 자리입니다. 피조물을 잘 돌보고 섬길 책임이 인간에게 주어졌고 그 사명을 감당할 마음도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피조물을 고통 가운에 몰아넣었습니다. 창조의 꽃인 인간이 강도가 되어 지구 생태계를 망쳤습니다. 어쩌다가 인간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까?
독일의 생태신학자 프란츠 알트는 말합니다.
지구는 하나의 생명체로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그 질병의 원인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다.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이다. 지구는 그 인간을 죽이기 시작하였다. 라고 말입니다.

뜨거워지는 지구
우리나라는 개엽,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등 온난화 영향이 가시화 되고 있습니다. 사과 주산지가 경북에서 강원도로 옮겨 가고 있고, 멸치어장이 남해에서 동해와 서해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겨울 기상관측 이래 가장 따뜻했고 3,4월에 이미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날씨가 찾아왔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더운 날씨 10년이 90년에서 2006년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 중에 2005년이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었으며 그 해에 인도는 50도가 넘었고 유럽은 연일 40도를 웃돌았습니다. 이 더위로 유럽에서만 35,000명이 죽는 등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더위로 죽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름 날씨가 40도를 넘나드는 등 도시에서는 열섬효과가 나타나 열대야 기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네델란드 등 유럽에서는 4월 기온이 30도까지 올랐고 우리나라 5월 초순 날씨가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등 올 여름은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란 말이 올 여름을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보고서
지난해 11월 6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영국 정부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경제 수석인 니콜라스 스턴은 보고서에서 시급한 대책을 내 놓지 못하면 지구온난화 비용으로 9조 6천억 달러를 써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세계 1,2차 대전 비용을 상위하는 것으로 세계 공항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2007년 1월에 열린 다보스 포럼(경제포럼)의 핵심 의제는 단연 지구온난화였습니다. 다보스 포럼 이후 국민들의 저항에 밀려 부시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변하고 있습니다. 2017년까지 휘발유 소비를 20% 감축하기로 선언하고 대체 에너지로 바이오매스 생산을 선언했습니다.
지난 4월에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IPCC)의 보고는 지난 오십 년 동안에 있었던 지구온난화의 주된 원인이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힘으로 온난화에 대한 책임공방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또한 8년 내로 지구온난화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지구멸망도 가능하다는 사실상 종말을 예측함으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은 아열대기후로 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수종의 50%가 고사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도 살 수 없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발원지에서 멈추지 않고 바다까지 흐르는 강은 세계에서 177개 중 21개에 불과합니다. 향후 2025년엔 세계 인구의 60%가 물 부족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젖줄인 강이 산업화로 인한 오염과 댐 건설과 수중생물의 남획과 숲의 남벌과 기후변화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강도 만난 지구
인류의 산업화로 인한 화석연료 과다사용은 이산화탄소의 급증을 불러왔고 이는 바다를 산성화하여 산호초를 폐사(50%)시키는 등 바다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며, 남극과 북극, 빙하가 녹음으로 해수면이 높아져 주거지역의 침수 및 물 부족으로 대규모 환경난민이 발생하고 곡물생산량의 감소로 식량대란이 예상되며 더욱 빈번하고 강력해진 태풍을 만날 것이며, 집중호우와 가뭄으로 곤란을 격고, 해류의 이동을 바꾸고 있어 기후 대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라졌던 질병이 다시 살아나고 있어 전염병의 공포가 올 것입니다. 지형성 가뭄으로 인하여 지속적으로 사막이 늘어나고 있고 2100년엔 지구의 50%가 사막이 됩니다. 생물종의 멸종으로 한 해에 4만 종의 동식물이 사라지고 있으며 2100년엔 50%가 멸종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사는 초록별 지구가 심한 각혈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열이 나는 것은 심각한 병이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 몸에 열이 나는 것은 몸의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지구는 강도를 만나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역습
우리는 과학만능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과학은 비합리적인 요소를 많이 담보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자동차입니다. 첨단과학기술이 동원되어 만든 자동차는 인류를 넘어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구온난화입니다. 과학기술의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발명품들은 거대한 흉기로 변하여 지구의 생명을 위협하고 죽이고 있습니다. 전쟁보다도 더 참혹한 일들이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준다는 고마운 문명의 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동차를 너그럽게 용서합니다. 하지만 자동차는 지금 당장 시내는 물론 도로 곳곳을 점령하고 생명체에 치명적인 배기사스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하여 1년에 6~8천 명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사람이 한 달 먹을 산소를 단 한 시간 만에 먹어치웁니다. 그리고 독한 배기가스를 뿜어내어 각 종 질병을 양산합니다. 배기가스는 마침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구 생태계의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즘 들어 서울은 스모그 현상이 자주 발생합니다. 어제와 같은 그 청명한 하늘을 볼 수가 없습니다.(15/365) 배기가스는 노인과 어린이 약자에게 치명적입니다. 모든 도로는 자동차가 주인입니다. 사람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공간을 자동차에게 다 빼앗겨 버렸습니다. 골목길도 자동차가 다 점령하였습니다. 그 좁은 마당도 자동차가 점령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뛰어 놀 공간은 없습니다.
문명이 생태를 파괴해온 것은 문명의 기저를 이루는 과학이 생태환경 파괴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과학의 발달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도 인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니 결국은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이 지구 재앙의 원인인 셈입니다.

지구를 구할 자 누구입니까?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신음하고 탄식하는 피조물이 자신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자녀들을 고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고통스럽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누가 강도 만난 지구의 이웃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청파공동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우리의 구원만을 바라보았던 이기적인 신앙을 넘어 지구의 구원을 생각하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할 때입니다. 강도만난 지구에겐 이웃이 필요합니다. 바로 당신이 필요합니다.

한국교회의 사명
오늘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자연환경은 하나님의 몸과도 같으며 하나님의 은총이 담겨 있는 생명의 터전입니다. 자연환경을 움직이는 힘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창조질서는 근본적 질서이며 최고의 질서입니다. 창조질서를 거슬러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환경오염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는 생명과 생태의 균형을 깨뜨려 엄청난 지구재앙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구 생태계가 멸망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교과제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환경선교를 통해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일입니다. 이는 동산을 잘 돌보라는 최초의 사명을 회복하는 일이며 지구를 구원하는 소중한 일입니다.

지구를 식혀라
이제 기독교는 물량주의와 성장주의를 넘어 창조와 돌봄, 해방과 자유, 생명과 평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실천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구를 식힐 중차대한 책임이 교회에 주어졌습니다. 지구를 식힐 작은 실천이 절실합니다. 아무리 작은 실천도 지속적으로 하면 역사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에너지
에너지를 절약하고 지속가능에너지(태양광, 풍력, 지열)로 전환해야 합니다.
유럽연합은 이미 2050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을 50% 줄이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50%의 에너지는 지속가능에너지로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핀란드는 2020년부터 석유사용을 완전 금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태양광 발전기, 풍력발전기, 바이오 에너지 생산을 상용화하고 있습니다.
강원풍력은 대관령에 48기 풍력발전기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영덕에 풍력단지가 세워졌습니다. 제주도에도 풍력마을과 태양열마을이 세워졌습니다. 고창과 무안에 태양광 발전소와 바이오 에너지 시설이 들어옵니다.
청파교회는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오는 9월이면 청파교회 지붕에 태양 에너지를 얻은 발전기가 설치됩니다. 지구를 구하는 시설입니다. 교회가 앞장서서 주 1회 통행금지를 지킵시다. 매 주일은 야간 12시에 새벽 4시까지 출입을 삼갑시다. 십자가 네온은 심야엔 소등합시다. 주 1회(화요일) 전기 없는 날을 지킵시다. 실내 적정온도 준수하기에 서약합시다. 스위치가 달린 멀티 텝을 사용합시다.

대중교통과 자전거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합시다.
자동차 요일제에 참여합시다. 매월 첫 주일은 차 없는 주일을 지킵시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을 맹종할 것이 아니고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의 이기를 넘어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 대안이 자전거입니다. 인간이 만든 기계 중에 자전거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자전거가 인류를 구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다시 생각할 때입니다. 만일 중국과 인도가 우리나라만큼 자동차를 타게 된다면 지구는 끝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더 이상 방관하거나 묵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지구가 강제로 우리를 원시적 삶으로 돌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스스로 공존의 삶을 고민할 때입니다. 이제 지구 생태계와 화해할 때입니다. 자전거는 그 공존의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인 지구 생태계를 살리고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교회의 사명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무너지는 생태환경을 회복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들을 정부에 요청하고 자발적 참여가 교회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회복을 위해 준비된 기구인 기독교 환경운동연대를 위해 기도하고 적극 참여합시다.

지구와 이웃하기
신음하고 탄식하고 있는 지구는 이웃이 필요합니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길들여진다는 것
어린왕자라는 책을 보면 지구를 방문한 어린왕자가 어느 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여우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외로웠기 때문에 여우에게 같이 놀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우가 말합니다.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아, 미안해.” 어린 왕자가 말했습니다. 잠시 생각한 어린왕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무슨 뜻이니?”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넌 내게는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하지 않고 너도 내가 필요하지 않아. 너에게 난 수 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지는 거야. 넌 내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 되는 거고 나도 너에게 이 세상에 하나뿐인 여우가 되는 거지.”

친구가 된다는 것, 이웃이 된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겐 예수가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예수의 가르침과 삶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모두 특별한 사건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지구와 이웃이 된다는 것은 지구와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지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인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모든 존재는 하나입니다. 지구가 있음으로 내가 있는 것입니다. 지구를 사랑하는 길이 나를 사랑하는 길과 하나입니다. 물론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사랑하는 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음하는 지구의 이웃이 되는 일은 지구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의무를 넘어 사명입니다. 예수께서 주신 새로운 계명입니다. 서로 사랑하랍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불입니다. 불은 엘리야의 제단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슴과 나아가 한국교회와 인류에게 사랑의 불이 필요합니다. 20년 전 민주화를 열망하는 하늘의 사람들에게 정의와 민주의 불로 오신 사랑의 불이 지금 이 땅에 절실합니다.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구에게 덜 부담을 주는 생활방식이 필요합니다. 절제의 삶입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길에서 딱 알맞게 살라는 절제의 삶을 실천하게 됩니다. 좁은 길로 걸어가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 작은 것이 아름답고 작은 것이 구원의 길임을 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아주 작은 실천이 지구를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할 것이며 영생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이미 좋은 세상이라는 어느 시인의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지구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여러분은 이미 지구의 이웃입니다. 지구의 구원자입니다.

2007년 6월 10일 양재성목사

등 록 날 짜 2007년 06월 10일 12시 35분 4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