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9. 사랑의 학교
설교자 김기석
본문 눅2:41-52
설교일시 2008/05/11
오디오파일 s20080511.mp3 [7098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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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 문지방을 넘기 전
예수님의 어린 시절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그렇게도 공을 들였던 누가조차도 공생애 이전의 예수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열 두 살적의 에피소드 하나가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유년기 이야기를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눅2:40)는 말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때까지의 예수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41절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예수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의 이야기야말로 예수님의 삶의 문지방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지방은 양쪽 문설주 아래에 가로댄 나무로서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예수가 유년 시대라는 문지방을 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열 두 살입니까? 그것은 이야기꾼인 누가가 그리스-로마 문화에 익숙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열 두 살은 그리스-로마 신화나 서사시에서 영웅들이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나이입니다. 누가는 그리스 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예수가 남다른 면모를 지닌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 열 두 살 적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기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랍비 전통도 열 두 살을 매우 중요한 나이로 취급했습니다. 열 두 살 쯤 된 소년들은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하고, 부모는 좀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아이를 훈도해야 하고, 단식을 비롯한 종교적인 의무도 수행해야 했습니다.

누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이면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유대인 중 성인 남성들은 일 년에 세 번,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에 예루살렘을 순례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기억함과 아울러,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민족적 동일성과 정체성을 재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이런 순례 절기에 온 가족이 다 동행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가족이 동반 순례를 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신실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유월절 행사는 8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순례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 이틀 정도 머물다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예수님의 가족은 절기 내내 예루살렘에서 보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절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생겼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룻길을 간 후에야 아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럴 수 있겠는가 싶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순례절기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상당히 큰 규모의 순례단을 꾸렸다고 합니다. 혼자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는 여럿이 분담하여 준비하는 게 덜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을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길을 걷는 동안 아이들은 부모보다는 친구나 선후배들과 어울렸을 겁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하룻길을 간 후에야 아들이 없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놀란 가슴을 애써 달래며 아들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을 겁니다. 사흘 째 되는 날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아들의 낯선 얼굴
그들은 축제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성전에서 아들을 찾았습니다. 누가는 예수가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했다고 전합니다. 이런 반응은 “(아기가)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는 말씀과 통합니다. 화가들은 성서의 이 인상적인 장면을 화폭에 옮기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 가 그린 <학자들 사이의 그리스도>(1506)라는 그림을 좋아합니다. 화폭에는 예수를 중심으로 네 명의 박사가 등장합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책을 펼쳐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찾기 위한 것 같습니다. 이마에 성경 구절을 붙인 채 서있는 랍비는 커다란 책에 손을 얹은 채 놀란 눈으로 예수를 바라봅니다. 또 한 사람은 몹시 당황한 듯 보입니다. 그의 손은 마치 당혹감을 반영하는 듯 뒤틀려 있습니다. 그들 뒤로는 뭔가를 탐색하는 듯한 눈빛의 두 사람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눈빛은 예수가 이후에 받게 될 질시를 예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 모든 등장인물 가운데서 오직 예수만이 고요합니다. 마치 깊은 곳을 응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눈길은 부드럽고, 뭔가를 설명하는 듯한 손동작도 자연스럽습니다. 뒤러는 이 그림을 통해 박사들의 지식이 책에 의존한 것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예수의 지혜는 하늘에서 온 것임을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놀란 것은 박사들만이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놀랐습니다. 아들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선생들과의 대화에 몰두하고 있는 아들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그 아들과는 달리 보였을 겁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때로는 낯설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낯설음 속에서도 역시 말을 건네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마리아는 아들을 가볍게 나무랍니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48)

당연한 질책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뜻밖입니다. 아니 당혹스럽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49)

우리는 이 짤막한 대화를 들으면서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애를 태웠다’는 어머니의 말에 예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내 아버지’라는 말이 뭔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가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양아버지일지라도 요셉은 분명히 예수의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기 존재의 더 깊은 뿌리를 가리켜 보이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큰 뜻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생명입니다. 우리를 보내신 분의 뜻이 무엇일까를 늘 물을 때 우리 삶은 하늘을 향한 순례 여정이 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그 뜻을 잊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하늘을 잊고 세속적인 일에 골몰하며 사는 동안 영혼은 납작해지고 작아집니다. 주님이 일생을 통해 일깨우려 한 것은 우리 삶은 먹고 마시고 입는 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육신은 밥을 먹어야 살지만 사람은 뜻을 먹어야 삽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집은 어쩌면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나사렛의 어린 시절
하지만 예수는 유년의 경계인 문지방을 완전히 넘어 다른 세계로 가지 않았습니다. 누가의 이야기 솜씨가 빛나는 것은 이 대목입니다.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이 대목은 참 중요합니다. ‘순종하며 지냈다’는 이 한 마디는 예수님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해야 할 인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처음부터 완성된 존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여전히 가족 관계를 통해 배울 것이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부모의 세심한 돌봄을 받고, 형제자매들과 경쟁도 하고 우애를 나누기도 하고,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면서 그는 참 사람으로 성장해 야 했던 것입니다.

또 그림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만 저는 헤리트 반 혼트호스트(Gerrit van Honthorst)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1620)이라는 그림을 참 좋아합니다. 그림은 요셉의 목공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소년 예수는 끌과 망치로 나무를 다듬고 있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양초를 밝혀 들고 있습니다. 그 불빛은 요셉과 예수의 얼굴을 환히 비추고 있는 데, 두 천사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화가는 촛불을 들고 있는 예수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에 오셔서 불을 밝혀주시는 주님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여간 평화롭지가 않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은 신뢰와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자식들을 돌보는 부모, 그리고 부모를 깊이 신뢰하며 순종하는 자녀의 원형을 우리는 이 성(聖) 가족의 모습을 통해 보게 됩니다.

지난 설 무렵 저는 신문 컬럼을 읽다가는 가슴 찡한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인 박경철 선생이 들려주는 상호씨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상호씨는 말 그대로 효자입니다. 중풍을 앓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면서 그는 퇴근 후 매일 밤 어머니 곁에서 잠을 잤습니다. 가벼운 치매 증상까지 보이는 어머니를 그는 정말 소중히 보살폈습니다. 그는 가끔 휴지를 둘둘 말아 김밥이라고 내밀어도 “아이구, 이거 맛있겠네” 하고, 어머니를 부축해 복도를 걷던 중 선 채 실례를 하셔도 “아이구 울 엄마 시원하겠네” 하며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빼빼 말라가면서도 밤에 어머니 곁을 지키는 이유는 보호자가 없으면 주무시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붕대로 침대에 고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 전날 상호씨는 간병인 아주머니께 간곡한 부탁을 드렸습니다. “아주머니, 저, 제가 십 만원을 따로 드릴 테니 다른 아주머니 한 분하고 같이 설 전에 우리 어머니 목욕 좀 시켜 주세요.” 간호사들이 가끔 소독 거즈로 닦아드리고, 자신이 주말마다 병원 샤워실에서 어머니 목욕을 시켜 드리긴 하지만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날 간병인 두 분이 큰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시켜 드렸습니다. 오랜만에 편안하고 고운 모습으로 침대에 누우신 어머니의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밤 상호씨는 준비해 온 한복을 어머니 머리맡에 두고, 머리를 빗겨드리면서 오랜만에 맑은 정신을 찾은 어머니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울 엄마, 올해도 병원에서 세배 받게 생겼네. 이제 얼른 나아서 내년에는 세배도 집에서 하고, 차례도 집에서 모십시다.” 다음 날 아침 상호씨는 어머니께 한복을 입혀드리려다가 어머니가 다시는 깨지 못할 깊은 잠에 드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한겨레신문, 2008년 2월 16일자, <10만원짜리 목욕>)

발전이란 이런 것입니다. 보듬어 안고, 사랑으로 돌보려는 마음이 자라는 것 말입니다. 우리 모두 상호씨의 마음으로 산다면 세상은 살만한 곳으로 변할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신뢰와 사랑이야말로 이웃 사랑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 고향이 된 사람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마리아의 모습에 감동합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목자들을 통해 전달된 하늘의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어떻게 했던가요?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눅2:19). 오늘 본문에서 소년 예수가 한 말을 들은 마리아는 아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예수의 어머니가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눅2:51)고 전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는 결코 무심하지 않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어머니와 자식들은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품이고 고향입니다.

오늘 주보에 조선대 국문과 교수인 나희덕의 시 <나의 어머니>를 옮겨놓았습니다. 시인의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많습니다. 전쟁 이후 고아를 돌보는 일을 시작했던 남편 덕분에 수많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라 독립해 나가도 여전히 어머니는 사랑의 품입니다. 전쟁터 같은 세상에 나가 살다가 지친 아들딸들이 언제라도 돌아와 안길 수 있기에 말입니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아들도, 시집살이가 고달픈 딸도 그 품에 돌아와 위로를 받습니다. 그래서 친딸인 시인조차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라고 부르기가 망설여집니다.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사모곡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자식들과 내가
형제처럼 사는 세상 만드시려고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 주신 우리 어머니”

먼 곳에서 방황하다가도 문득 돌아가 안길 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인생은 살만한 곳으로 변합니다. 자식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가슴에 간직하고 또 그것을 되새김질하는 어머니가 계셔 예수님도 있습니다. 꼭 육신의 부모라야 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스승도, 벗도, 교우도 우리의 품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혈연의 가족관계를 넘어 사랑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사랑의 학교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막3:35)라고 말했습니다. 시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가 형제자매처럼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어머니가 되어주라는 부름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조금씩 확장되어 나간다면, 우리 모두 누군가의 품과 고향이 되어주기로 작정한다면 세상은 살만한 곳으로 변할 겁니다. 이 소명에 응답하며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08년 04월 06일 12시 50분 5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