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5. 나는 별 아저씨
설교자 김기석
본문 빌2:12-18
설교일시 2008/06/29
오디오파일 s20080629.mp3 [7098 KBytes]
목록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나의 피를 붓는 일이 있을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여러분 모두와 함께 기뻐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 주체적 신앙
나는 아직 사람이 덜 되어서 그런지 모습은 어른인데 처신은 아이 같은 사람들을 보면 좀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이 혀짤배기 소리를 내는 것도 그렇고, 매사에 의존적인 사람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제쳐놓고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가자”(6:1a)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13:11). 여기서 말하는 ‘성숙한 경지’ 혹은 ‘어른’이 된다는 것을 달리 말하자면 ‘주체적 신앙인’이 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앙은 지성을 희생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지고 우리는 무엇이 참인지를 끝없이 물으며 살아야 합니다. 길을 찾을 수 없을 때는 누군가에게 물어가며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 선택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고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것처럼,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12)

이 권고는 매우 비장합니다. 그것은 바울이 임박한 자기의 죽음을 내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미구에 닥쳐올 자신의 부재가 교인들을 낙심시켜 믿음의 길에서 돌아서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떤 경우에도 ‘복음의 대의’를 품고 살아가는 그들의 태도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라는 영적 거인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주었을 든든함을 익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폭염 밑을 걸어갈 때는 손바닥만한 그늘만 만나도 고마운 법인데, 팍팍한 인생길 걸어가는 동안 큰 그늘이 되어주는 이가 곁에 있다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의 그늘 아래 몸을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게 인생입니다. 그 그늘 아래 잠시 머물 수는 있지만 그 아래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이릅니다.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말입니다. 홀로 설 줄 아는 신앙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교회 나가고, 누구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유치한 신앙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내적인 부름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作福法
사도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칫하면 오해하기 쉬운 말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니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다음에 나오는 구절과 연결시킬 때만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입니다.”(13)

정리해 봅니다.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주십니다. 그 마음을 굳게 붙들 때 우리는 구원의 문턱에 당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자 하는 뜻을 삶으로 풀어낼 수 있느냐 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욕망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습성 때문에 우리의 ‘고백’과 ‘실천’은 늘 불화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과 나누고,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들을 대하고, 설 땅 잃은 사람들의 설 땅이 되어줄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내 것 빼앗아갈세라 움켜쥐느라 바쁘고, 상처입지 않으려고 마음을 꼭 닫고 살고, 귀찮은 일이라도 생길까봐 어려운 이들과 연루되는 것을 꺼립니다. 그러면서 점차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는 것이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압니다. 양심을 독일말로 ‘Gewissen’이라고 합니다. ‘ge’라는 단어가 ‘집합, 공동’을 뜻하는 말이고 ‘wissen’이라는 말이 ‘알다, 이해하다’라는 뜻이니까 양심 곧 Gewissen은 풀이하자면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먼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늘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건너편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입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신30:14) 마음의 길을 따르면 인생이 쉬운 데, 마음을 거스르며 사니 인생이 곤고합니다. 옛말에 ‘君子는 居易以俟命하고 小人은 行險以徼幸이니라’(中庸, 14章)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쉬운 데 거하여 명을 기다리고, 소인은 어려운 일을 하면서 바랄 수 없는 행운을 바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의 삶은 쉽습니다. 억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제일 어렵다고 말합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에 사로잡힌 탓입니다. 그러니 삶이 힘겹습니다. 모두가 일등을 하려고 하니 인생이 피곤합니다. 자기 보폭에 맞추어 걸어가면 될 텐데 말입니다.

• 별과 같은 사람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며 사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불평과 시비입니다. 베드로는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은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랑받던 제자를 가리키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21:2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반응 없는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나서, 혹은 나 홀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라비아라는 여성은 하나님께 이런 기도를 올렸습니다.

오 나의 주님, 내가 만일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을 경배한다면 나를 지옥 불에 던지십시오. 내가 만일 천국에 대한 열망 때문에 당신을 경배한다면 나를 천국에서 영원히 쫓아내십시오. 하지만 내가 만일 그저 당신이기에 경배한다면 내게서 당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거두지 말아주십시오.(<>, ed. James Fadiman & Robert Frager, p.86)

연약한 사람이기에 때로 회의의 물결에 파묻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앉아 마음을 고요히 하면, 우리를 사랑의 팔로 감싸 안고 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골방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일상이 될 때 우리 내면은 든든해지고, 신앙의 뿌리는 점점 깊어집니다. 그때 후회와 염려 사이에서 바장이던 삶에서 벗어나 오늘을 한껏 살아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살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별과 같이 빛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현종 선생이 오래 전에 쓴 시 가운데 <나는 별아저씨>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첫 연은 이렇습니다.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모두가 땅만 바라보고 사는 세상에서 시인은 별의 삼촌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이 도저한 자기규정이야말로 땅에서 하늘을 지향하며 살 수 있는 힘입니다. 성도들의 가슴에는 ‘나는 별아저씨’라는 은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외로운 이의 벗이 되어주는 별, 길 잃은 이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별, 지친 이의 가슴에 서늘한 틈을 만들어 주는 별 말입니다.

• 하늘의 마음을 잡으라
별처럼 살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中庸章句序에는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전하여 준 통치의 묘가 나옵니다. “人心惟危하고 道心維微하니 維精維一하여야 允執厥中하리라”. 사람의 마음은 위태롭고 하늘의 마음은 은밀하니 마음을 정성스럽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그 핵심을 붙잡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자꾸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세상이 참 시끄럽습니다. 걱정이 많으시지요? 쇠고기 수입 개방이 현실화되면서 시민들과 정부가 극한의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제 할 만큼 했으니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며 공권력을 총동원해 저항의 싹을 자르려 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다면서 적극적인 투쟁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촛불을 든 시민들을 향해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찌지를 붙임으로 시민들을 자극하고, 다른 이들의 가슴에 증오의 기름을 부어댑니다. 경찰은 물대포에 최루액과 형광물질까지 투입해 폭력에 동참하는 이들을 끝까지 검거하겠다고 말합니다. 마침내 어제 저녁 서울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증오는 증오를 부릅니다. 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이들을 보면 눈물겹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역사에 무임승차할 생각이 없는 이들입니다. 누구보다도 가엾은 것은 전․의경들입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다가, 몸과 마음이 다 황폐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엇이 착한 시민들을 거친 투사로 만들고 있는지 방벽 뒤에 숨은 책임자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는 인간관계의 근본원리 가운데 하나로서 ‘le regard'(the look)을 꼽았습니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주체로 대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고 관계의 시작입니다. 국민들이 느끼는 속상함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영적으로 눈을 뜬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비폭력적 평화의 길을 우리에게 가리켜 보이고 계십니다. 비폭력은 무기력해 보입니다. 회원들과 함께 비폭력 저항을 택했던 YMCA의 이학영 사무총장이 팔에 골절상을 입고 입원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볼 때 사람들은 폭력의 유혹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비폭력만이 진정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비폭력의 사람들에게 ‘적’은 없습니다. 오직 상대에 대해 연민의 마음을 품을 뿐입니다. 종교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은 그 때문입니다. 지금은 우리 마음에 십자가를 세워야 할 때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자꾸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답이 보이질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가 평화와 입을 맞추는 세상,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는 세상은 우리의 꿈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꿈이기도 합니다(시85:10-11). 세상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그런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오실 길을 닦아야 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그런 세상을 열기 위해 예수의 길 위에 서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기 삶의 보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성도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자기희생의 각오를 가진 이들만이 역사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의 제사와 예배에 자신의 피를 붓는 일이 있더라고 기뻐하겠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벗어나게 합니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려는 주님의 일터에 뛰어들 때, 그 속에서 땀 흘리고, 눈물 흘리고, 피를 흘릴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감옥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기쁨과 감동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생업의 현장에서도, 갈등의 현장에서도 말입니다. 삶이 힘겨울 때마다 ‘나는 별아저씨’라고 조용히 속삭여 보십시오. 하늘로부터 새로운 힘과 능력이 공급될 것입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어 가십시오. 아멘.

등 록 날 짜 2008년 04월 06일 12시 50분 59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