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51.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설교자 손여진, 김기석
본문 계 3:20-22
설교일시 2009/12/25
오디오파일 s20091225.mp3 [4834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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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계3:20-22
(2009/12/25, 성탄절)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이기는 사람은, 내가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겠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메시지1

안녕하세요 예수님

저는 이번 성탄절이 여태껏 맞이했던 성탄절과는 조금 다른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저는 보통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선물, 교회에서 하는 성탄맞이 축제연습 - 이런 것들을 떠올리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탄절은 이 편지 때문에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서 태어나게 하셨을까?’
‘왜 굳이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셨을까?’
교회에서 목사님이나 교회선생님들께 배울 때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말씀을 듣긴 했지만, 너무나 막연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2학년인 제 동생에게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예수님이 왜 태어나신 것 같아?”
그랬더니 동생은 “우리를 도와주러!” 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얼 도와주시러?” 하고 또 물었더니, “뭐든지 다!” 라고 말했습니다.
동생의 말을 듣고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건, 우리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그 본보기가 되어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 아닐까? 동생 말대로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되길 바라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번 성탄절을 계기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뵐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예수님 생신 너무너무 축하드립니다.
2009년 12월 25일 손여진 올림
(초등학교 6학년인 손여진 양의 편지입니다. 맞춤법이나 글의 문맥을 다듬을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어린이의 진솔한 심정이 담긴 글을 덧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시지2

오늘도 우리 곁에 오고 계신 주님!
밤이 가장 긴 동지 무렵, 우리는 주님을 뵐 희망에 가슴이 설렙니다. 마음을 닦고 닦아 주님 모실 자리를 준비해야 하는 데, 우리 삶은 분망하기만 합니다. 허겁지겁 마음만 급할 뿐, 도무지 살뜰하게 마음을 살필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어쩌다 마음을 살필라치면 그 휑한 어둠이 오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빛으로 오시는 주님이 더욱 그립습니다. 저 광화문 광장과 청계천 광장, 그리고 도시의 밤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색전등 말고, 마땅히 가야 할 길 밝혀주는 빛이신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빛으로 오시는 주님!
저 화려한 인공의 조명에 한눈을 팔다가는 동방의 박사들을 주님께로 인도했던 별빛을 볼 수 없습니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는 별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세상에 가득 찬 어둠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병든 사람들, 귀신 들린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 이중 삼중으로 소외된 사람들 곁에 다가서셨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역사의 접힌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들을 어루만지셨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고, 귀신들은 내쫓겼고, 사람들은 사랑과 정성으로 서로를 섬겼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이들은 숙명의 너울을 벗고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에 나오는 아담의 창조가 떠오릅니다. 앞으로 태어날 하와와 인류를 뒤로 하고 하나님은 갓 창조된 아담을 향해 손을 내뻗어 그에게 영혼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반쯤 몸을 일으킨 아담도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습니다. 닿을락말락한 그 손가락 끝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사랑이 탄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내뻗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할 차례인가요? 주님은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보시고 “네 손을 내밀어라”(마12:13) 하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손을 내밀라’ 하십니다. 주님, 우리의 손을 온전히 회복시켜 주십시오. 어이없는 세월을 사는 동안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감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힘없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을 잃은 목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깨어났습니다. 오시는 주님, 우리를 만져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주님을 향해 내민 손은 곧 가슴 시린 이웃들을 향해 내뻗은 손임을 알고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병들었다고, 늙었다고, 배우지 못했다고, 번듯한 직장이 없다고, 집이 없다고, 나라가 없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무시당하는 사람들,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손 내밈, 그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일임을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 참석해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라고 전해줍니다. 잔치는 무르익고 있는데, 준비한 포도주는 동이 났으니 집 주인의 속 타는 마음 오죽했겠습니까? 주님은 신명이 떨어질 수도 있는 그 집에 신명을 돌려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을 이렇게 천명하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10:10b) 만나는 모든 사람 속에 깃든 가장 아름다운 요소를 이끌어내는 마중물, 주님은 그런 분이셨습니다.

온 세계가 주님 오심을 기뻐하는 이날, 이상하게도 어떤 쓸쓸한 음성이 귓가에 들려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9:58). 주님, 지금도 여전히 외로우신지요? 이 땅에 이렇게도 많은 교회들이 있는데, 주님을 향한 찬미의 소리 이리도 높은 데, 여전히 추수할 일꾼이 적다고 탄식하고 계신지요? 가야 할 곳 이리도 많고, 돌봐야 할 이들 이리도 많은 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탄식하고 계신지요? 주님, 우리가 가겠습니다. 주님의 마음 품고,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가겠습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요10:16). 이 말씀은 나와 내 가족 밖에 모르고 살아온 우리 영혼을 내리치는 죽비소리입니다. 이 땅의 교회를 생각합니다. 욕망을 부추기는 세상이 사람다운 삶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는 오늘,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더라도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교회들이 바알과 아세라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주님은 가진 것이 없었기에 모두의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물리적인 힘이 없었기에 정신의 힘으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예수님의 기개를 잃어버린 채 맛 잃은 소금처럼 땅에 버려져 밟히고 있습니다.

주님,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아니, 어디로 가야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굶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의 모습으로 오고 계십니까? 주님을 위해 예비된 저 화려하고 아름다운 교회에는 머무실 마음이 없으신지요?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일어나 주님의 발걸음이 머무시는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 저편에서 불기 없는 냉방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들, 신선한 물 한 잔 마실 수 없어 죽어가는 형제자매들이 있는 곳, 세상에서 난파당한 상처를 자녀들에게 전이시키는 부모들이 있는 곳, 공부 못한다고 가난하다고 교육적인 배려조차 받지 못한 채 문제아로 낙인찍힌 아이들이 있는 곳, 근 1년 가까이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숯덩이가 된 가슴을 부여안고 하늘만 바라보는 용산 참사 유가족들이 머무는 곳,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자리……. 바로 그곳이야말로 주님을 만나 뵐 자리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심지를 돋워 어둠 조금 내몰고 다가올 새벽을 기다린다던 시인처럼, 우리 사는 삶의 현장에 등불 하나 밝히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날마다 우리 마음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인터넷에 마음을 빼앗기고, 텔레비전 소리에 귀가 팔려 주님의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제발 포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집 문을 열 때까지 될 수 있으면 세게 그리고 오랫동안 문을 두드려주십시오. 감옥을 벗어난 베드로가 그 은밀한 기도처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을 때,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기뻐했던 ‘로데’처럼(행12:13) 우리도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게 해주십시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계3:20b)

주님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주님의 마음과 하나 되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는 지복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이 쓸쓸한 겨울 아침, 우리 마음에, 우리 교회에, 우리 사회에,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들의 삶 가운데 훈훈한 사랑으로 와주십시오.

2009년 12월 25일
不肖 제자 김기석 올림

등 록 날 짜 2009년 12월 25일 11시 45분 13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