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 은사를 나누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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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12:1-11
설교일시 20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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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를 나누는 사람들
고전12:1-11
(2001/1/14)


가끔씩 후배들이 제 방에 왔다가 돌아갈 무렵이 되면 저는 주위를 둘레둘레 바라봅니다. 뭐 좀 줄 것 없나 찾는 것입니다. 책 좋아하는 목사가 줄 것이라고는 책밖에 없지만 저는 무엇이든 주고 싶은 것입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좋은 책을 읽고 나면 몇 권을 더 사두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요즘은 후배들이 먼저 말합니다. "뭐 주실 것 없으세요?"

저는 책이 제법 많은 편입니다. 제 방에 들어오는 청년들이 제게 가끔 가슴 아픈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이 책 다 읽으셨어요?" 물론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많습니다. 필요에 의해서 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읽고 싶은 욕구가 사라져버린 경우도 많습니다. 어느 때부터인지 나는 책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누군가가 더 유용하게 쓸 것 같으면 그에게 주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책보다 더 좋은 것을 말입니다. 따뜻한 미소, 다정한 말 한 마디…어쩌면 가장 좋은 것은 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퇴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 가운데 하나로 꼽힌답니다. 이런저런 성적 스캔들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긴 했지만, 그의 인기는 여전합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클린턴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떠들썩할 때 클린턴이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그는 대사관저에 영사와 영사 부인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었습니다. 영사 부인들 가운데는 클린턴을 몹쓸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티가 끝난 후에는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다 그의 팬이 되었답니다. 이유가 참 재미있습니다. 클린턴은 상대방이 누구이든지 마치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있는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 상대방에게 집중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어쩌면 바람둥이의 비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의 태도는 "당신은 내게 소중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

우리는 지금 내게 주어진 만남이 가장 소중한 생의 재료임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선물로 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삽니다. 정현종 시인은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이라는 시에서, 자기는 가끔 지난 날을 돌아보며 후회한다고 말합니다.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소중한 순간들을 헛되이 보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그가 지난 날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까닭은 자기가 흘려보낸 그 순간들이야말로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였음을 뒤늦게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사는 현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앞에 당도한 시간을 사랑하고, 내 가까이에 있는 이부터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젊은이는 젊음을 사랑하고, 나이 드신 분은 나이 듦을 사랑해야 합니다. 고통과 슬픔과 비애조차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천은 기쁨과 행복이라는 날실과 슬픔과 고통이라는 올실로 엮이어 있습니다. 모든 순간이 다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안고 우리에게 옵니다. 중요한 것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사람은 삶의 꽃을 피워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꽃봉오리로 피워내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이들에게 생명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신바람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나누어주며 살고 있습니까? 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며 삽니다.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몸짓 하나하나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는 사람도 있고, 큰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나의 눈빛이 다른 이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날카롭게 박힐 수도 있고, 마음 속의 얼음을 녹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우리는 사랑을 증언하고 인생을 축복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삶은 이처럼 단순한 원리 위에 서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리는 너무도 확고해서 아무도 흔들 수 없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그 마음을 붙든 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십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바람' 혹은 '숨'에 비유되곤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 즉 숨을 들이마시고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숨이 떠난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숨이 충만한 사람을 보면서 우리는 '신바람나게' 산다고 말합니다. 신바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바람, 곧 성령이 아니겠습니까? 신바람이 나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는 것처럼, 성령 받은 사람은 무엇인가를 합니다.


성령의 다양한 선물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다 다릅니다. 물을 생각해보세요. 물은 부드러워서 담긴 그릇의 모양에 따라 형체를 바꿉니다. 하지만 물의 성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도 그와 같습니다.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그 발현되는 형태는 다 다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은혜의 선물은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같은 주님을 섬깁니다.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주신 성령의 선물, 즉 은사는 개인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시는 것은 공동의 이익을 얻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루를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 덕입니다. 전기가 나가지 않을까 지키고 있는 이들,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 쓰레기를 치우는 이들, 경찰, 군인, 버스 기사나 철도 종사원…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우리를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가 다양한 구성원들의 상부상조를 통해 성립되는 것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각자에게 적합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받은 바 은사를 가지고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그러한 상호 섬김을 통해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받은 바 은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한 소년이 엄마와 함께 연주회장에 갔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듣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꼭 그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고 싶었습니다. 소년은 단장을 찾아가 자기 소원을 말했습니다. 단장이 "너는 무슨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니?" 하고 묻자 소년은 "아무 것도 못해요. 하지만 저 앞에서 막대기를 흔드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대답했답니다.


섬김을 위해 주어진 은사

그래요. 중요한 것은 함께 하겠다는 것이지요. 교회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믿음은 자기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공동체를 섬기려 할 때 자랍니다. 은사를 묻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름다운 연주회를 위해서는 연주를 잘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연주를 듣고 박수를 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런가 하면 연주하는 이들을 위해 뒤치닥거리를 하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모두가 가르치는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병고치는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모두가 기적을 행하거나 예언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뜻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받은 은사를 자랑할 것도 없고, 속상해 할 것도 없습니다. 그 은사들은 다만 섬기라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참 많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에 나와 수동적인 객체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해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기 원하십니다. 내 일이 바쁜데, 내 짐이 무거운데,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말하지 마십시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었을 때 이미 영생의 길목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하라시는 일을 하기 위해 땀흘려본 사람은 압니다. 그 땀흘림을 통해 자기 생의 비애가 줄어들었음을 말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자신이 누군가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에서 옵니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만, 우리는 "나는 명령 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라는 명령, 은사를 나누라는 명령을 지킬 때 우리는 살아있음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받은 바 은사를 나누십시오. 먼저 이 교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십시오. 성가대원으로, 교사로, 주방봉사원으로, 자원봉사자로…우리가 은사를 나누기 시작할 때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기쁨을 참으로 맛보게 될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선행이야말로 우리 삶에 깊은 감동과 기쁨을 줍니다. 지금 건강할 때, 지금 시간이 있을 때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으로 여러분 모두 은사의 나눔을 통해 신앙의 더 깊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