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5. 기억 이어가기
설교자
본문 수4:1-9
설교일시 2001/2/4
오디오파일
목록

기억 이어가기
수4:1-9
(2001/2/4, 졸업감사예배)


내가 누나니까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성형수술을 하는 남자들을 보았습니다. 젊은 남성들이 성형외과를 찾아 코를 높이고, 턱을 깎아냅니다. 그들은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좋아서 한다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그런데 눈 밑의 주름살을 제거하려고 병원을 찾은 어느 할아버지를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젊게 살고 싶어서 그런다고 하셨지만, 주름 속에 담겨있는 시간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는 것 아닌가 싶어 씁쓸했습니다. 때가 되면 약해지고, 그러다가 스러지는 게 육체의 운명인 데 왜 그것을 거스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몸 나'를 위해 마음 쓰는 만큼, '얼 나'를 위해서도 마음을 쓰면 참 좋을 텐 데요.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쓴 동시를 읽고 가슴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과자 사로(러) 갔다.
동생이 자동차를 산다고 했다.
돈이 모자랐다
내가 삼백원만 사먹었다.
자동차를 살 수 있었다.
기분 참 좋았다.
내가 누나니 그래야 된다
― 정은솔(남양초등학교 1학년), [내가 누나니까]

동생을 위해 자기가 먹고 싶은 과자를 포기하고, 싼 것을 샀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행복합니다. 동생이 좋아하는 자동차를 살 수 있었으니까요. 참 기특하지요? 그런데 소녀는 의젓하게 말합니다. "내가 누나니 그래야 된다." 이 소녀에게 '누나'라는 존재는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동생을 책임지는 존재인가 봅니다. 어쩌면 소녀는 자기 마음속에 일고 있는 갈등을 잘 극복했기 때문에 그런 기특한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소녀의 마음이 조금쯤 자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경험을 시로 표현했으니 더 그렇겠지요? 어른들도 이렇게 날마다 조금씩 정신의 키가 자랄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영혼의 성장

아기들이 한 번 앓고 나면 재롱이 한 가지씩 는다는 말이 있지요? 사람들의 정신이 크는 것도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인 것 같아요. 대개 그런 계기는 고통스러운 경험일 때가 많습니다. 시험에 실패했다든지, 인간관계에 실패했다든지, 사업에 실패했다든지, 성공했던 일보다는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이 배웁니다. 조금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모독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공의 외길을 걸어온 사람에게서 우리는 인간미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실패는 쓰라린 것이지만 그 실패는 우리 정신을 겸허하고 맑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압도적인 경험을 할 때도 우리 영혼은 성장합니다. 영혼이 아주 고결한 사람을 만난다든지, 지칠 줄 모르는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 마음은 자랍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음식을 사주고, 좋은 옷을 사주고,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위대한 정신과 만나도록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집단적으로 경험했던 위대한 한 사건을 보여 줍니다.


흐르는 강물에 발 들여놓기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 바다 앞에서 최초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앞에는 홍해의 푸른 물이 넘실거리고, 뒤에는 바로의 군사들이 추격하고, 진퇴양난의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게 하셨습니다. 그 놀라운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찬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된 어려움 속에서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기들이 떠나온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자유인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훈련소였는데 백성들은 그 훈련을 좋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거듭되는 불평과 반역 속에서 그들은 하나 둘 죽어갔습니다. 애굽을 떠나왔던 1세대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광야에서 태어나 광야에서 자라난 사람들만이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 강 앞에서 망설이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제사장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메고 강을 향해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불합리한 명령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터툴리아누스라는 초대교회의 교부는 "불합리하기에 믿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신앙은 때로 불합리해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려는 결단입니다.

마침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넘실거리는 요단 강물에 발을 들여놓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물이 좌우로 갈라진 것입니다. 강물마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일까요? 백성들은 마른땅을 밟고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강을 다 건널 때까지 강 한복판에 우뚝 서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강을 다 건너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각 지파마다 한 사람씩을 뽑아서 제사장들이 서있던 곳에 가서 돌 열두 개를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순종의 고리

각 지파에서 뽑힌 사람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요단강 한복판에서 돌을 가져다가 자기들이 머무는 곳에 두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름다운 순종의 고리를 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했고,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자기 마음대로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전합니다. 백성들은 그런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저는 이런 아름다운 순종의 고리를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남을 알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신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문둥병자를 만났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몸에 변화가 없는 데도 제사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가는 도중에 자기들의 몸이 성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순종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자기 좋을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順),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삽니다(從).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자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이익이나 뜻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無'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깊으시고, 하나님의 뜻은 내 뜻보다 크심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순종하는 지도자를 모시고 있었기에 백성들도 역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의 성소

여호수아는 또 하나님의 뜻을 잘 헤아리는 해석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돌들은 후손들에게 조상들이 경험했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상기시킬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임을 말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먼 훗날 아이들이 강가에 놀러옵니다. 그들은 강가에 있는 열두 덩어리의 돌무더기를 볼 것입니다. 아이들은 소복하니 놓여있는 그 돌무더기를 보면서도 무심히 지나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 돌이 거기에 있게된 내력을 들려주면 아이들의 눈은 반짝일 것입니다. 그들은 그 돌무더기를 바라보면서 조상들이 겪었던 고난에 한숨짓고,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에 찬탄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 돌무더기는 그 돌무더기는 그들의 인생 길에서 힘겨울 때마다 되돌아가 신앙의 용기를 가다듬게 될 '기억의 성소'가 될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설 자리

요단 강가에서 일어난 이 일화를 보면서 제가 감동하는 것은 사실 다른 데 있습니다. 백성들이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양옆으로 갈라진 물길 한복판에 서있었던 제사장들의 모습은 너무나 생생한 그림으로 떠오릅니다. 그들도 사람인데 빨리 강을 건너가 쉬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남보다 빨리 그 강물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왜 없었겠습니까? 언제 위험이 닥칠는지 모르는데 그 사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리가 있겠어요? 하지만 그들은 강 한 복판에 태산처럼 버티고 서있습니다.

그들의 확고한 믿음과 순종은 백성들의 마음에 안정을 주었을 것입니다. 종교는 그리고 종교인은 세상에서 이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부끄럽습니다. 저는 요단 강 한 복판에 서있는 제사장들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본받아야 신앙의 사표라고 생각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숭고한 믿음과 순종을 기념해서 그들이 서있던 자리에도 돌 열둘을 세웠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그 날의 위대한 기억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사람은 물 속 어딘가에 있을 12개의 돌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삶이 힘겹고, 권태로울 때 여러분은 어디에서 새 힘을 얻으십니까? 의기소침해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힘을 잃었던 두 다리에 힘을 불러일으킬 만한 기억을 간직한 채 살고 있습니까? 그런 기억이 있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그런 기억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은 여호수아와 같은 순종하는 지도자, 하늘의 뜻을 올바로 해석할 줄 아는 지도자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길 한 복판에 버티어 선 채 백성들이 다 건너기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 굳건한 신앙인을 찾고 있습니다. 아직 그런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가 그런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돌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려울 때 도와주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의 돌을 가져오십시오. 그것을 통해 우리 교회는 아름답게 지어져 갈 것입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