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 아멘으로 살다
설교자 김기석
본문 고후 1:18-22
설교일시 2012/02/26
오디오파일 s20120226.mp3 [6964 KBytes]
목록

아멘으로 살다
고후1:18-22
(2012/2/26)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도 되셨다가 동시에 ‘아니오’도 되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 상처를 딛고
자비로우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강제북송을 앞두고 공포에 떨고 있을 탈북자들과도 함께 하시길 빕니다. 사순절 첫째 주일을 맞으면서 문득 성도로서의 우리 삶은 바울이 말했듯이 ‘아멘’이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린도교회처럼 바울의 애를 태운 교회도 드물 것입니다. 바울이 18개월이나 머물며 복음을 전했던 그 교회는 사도가 떠난 후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시끄러웠습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 세웠던 성령의 불꽃이 사그라지자 교인들은 사분오열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되어야 할 교회는 오히려 세상의 추문거리가 되고 있었습니다.

파당을 지어 서로를 헐뜯고, 교인들끼리 송사를 벌이고, 선물로 받은 은사의 경중을 따지고, 음란한 삶을 계속했습니다. 사랑이 식은 곳이야말로 사탄이 깃들기 좋은 곳입니다. 일부 교인들은 자기들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다했던 바울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사도의 자격이 없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변덕스럽다, 자기 잇속만 차리는 사람이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자기의 정신적․도덕적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이들을 깎아내리는 이들이 참 많습니다. 아무리 영혼의 그릇이 큰 사람이라 해도 이런 모함은 상처가 되게 마련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찾아가 그런 모든 오해를 풀까도 생각했지만 조금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적대자들은 고린도 방문을 미룬 바울에게 ‘신의 없는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적극적으로 자기 해명을 합니다. 마케도니아에 들렀다가 고린도로 가 모아진 의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려던 계획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마당에 돈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서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두고 맹세하듯 자기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갈1:10)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로마서에서는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롬14:8)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삶을 보건대 그 말은 한 점 과장도 없는 진실입니다. 바울이 자기 해명을 하는 것은 오해받는 것이 억울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왜곡될까 두려워서입니다.

• 아멘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고전11:1)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바울의 삶은 그리스도라는 중심과 연결된 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삶에서 일관성을 봅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려는 열망이었습니다. 예수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멘’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아니오’ 한 적이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성령은 예수님을 ‘아멘이신 분’(계3:14)이라고 말합니다. 이 강력한 단어 앞에서 우리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멘’이라는 말을 우리는 그저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으로 새깁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나는 신뢰한다’, ‘나는 굳건해졌다’는 뜻도 있습니다. 신뢰 없이는 ‘아멘’ 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아멘’ 하는 순간 우리 정신은 굳건해집니다. 예수님이 만일 하나님의 권위에 눌려 ‘아멘’ 하셨다면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일치와 사랑 안에서 ‘아멘’ 하셨습니다. ‘아멘’ 함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굳건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런 되먹임의 관계를 일러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은 ‘입맞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멘은 하늘과 땅의 입맞춤이고 포옹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믿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이 먼저고 순종은 그 다음이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오직 순종의 행위 안에서만 자신의 참됨을 입증합니다. 순종은 아주 구체적인 명령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 또는 말씀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에 순종하여 이웃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벗이 되어주고, 고통을 덜어주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의 편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우리 믿음이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은 한사코 고통의 자리를 피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자리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름에 늘 ‘아멘’으로 응답하셨습니다.

• 사명을 받들다
주님은 우리들의 삶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튼튼히 서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직립한 사람입니다. 오직 주님 앞에서만 무릎을 꿇을 뿐 세상의 어떤 권세 앞에서도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서는 사람 말입니다. 죄수의 몸으로 청문회장에 나선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고관들을 향해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행26:39)라고 말합니다. 이 당당한 자유가 참 부럽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던 그 숭고한 자부심이 우리에게 있는지요? 작고한 시인 김남주는 <자유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자유 좀 주세요 자유 좀 주세요
강자 앞에 허리 굽히고 애걸복걸하며
동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직립의 인간인 나는”

작은 풀뿌리에 걸려도 자꾸만 비틀거리는 우리가 이런 오연한 고백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께서 우리 속에 자꾸 생기를 불어넣어주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것으로 인친 표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일어서게 하는 힘입니다. 봄이 되어 초목이 깨어나듯 성령은 우리 속에 잠들어 있던 참 사람을 일깨우는 힘입니다. 그것은 때로는 거룩한 분노로 나타나기도 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힘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무너지지 않는 든든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 힘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 때문에 우리를 울게 합니다. 풍요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내적인 결핍과 불안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우리 속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까닭은 그들을 돌보고 일으켜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은 데 일꾼이 부족하다고 탄식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을 뜨고 바라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봉사와 섬김을 향해 첫 걸음을 떼기 시작하면 우리는 지금도 일하고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함으로 받는 주님의 살과 피를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은총을 누리기를 빕니다. 사순절 순례의 여정 동안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주님께 봉헌하며 사십시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멘’으로 살아가는 길, 곧 영생의 길입니다. 그 길을 걷는 이의 당당함으로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으십시오. 아멘.

등 록 날 짜 2012년 02월 26일 11시 51분 34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