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7. 하나님의 선율
설교자
본문 계5:7-14
설교일시 2001/2/18
오디오파일
목록

하나님의 선율
계5:7-14
(2001/2/18)


찬송의 선율에 몸을 맡기라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거나, 잠을 청하십니까? 아니면 홀로 조용히 산책을 하십니까? 여러분 중에는 음악을 듣는 분도 계실 겁니다. 며칠 전에 저는 조금 지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사무실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때 교육관에서 교우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 선율에 내 몸과 마음을 맡겼습니다. 찬송가의 선율은 곧 제 온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얼싸안았습니다. 평온했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심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삶이 제 아무리 곤고하다 해도 찬송을 부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찬송은 즐거울 때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도 힘겨울 때도 낙심될 때도 불러야 합니다. 마음을 담아 찬송을 부르면서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힘을 얻습니다. 용기를 얻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진정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찬양합니다. 귀 있는 사람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찬송 시인은 노래합니다. "숲 속이나 험한 산 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찬송가40장 22절 중). 귀가 예민한 사람은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도 듣는답니다. 별들이 반짝이며 건네는 말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참 한가한 소리구나 하실 겁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있는 온갖 것들이 내는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가한 사람뿐입니다. 항상 일에 쫓기고, 피곤에 찌들리다 보면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저 피조물들의 노래를 들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한가해야 만물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노래는 노래를 부르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참으로 장엄하고 신비롭습니다. 장로 요한은 박해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 주위에는 네 생물이 시립(侍立)하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같았습니다. 또 보좌를 중심으로 해서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쓴 스물 네 장로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보좌에 앉으신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렸습니다. 장로 요한은 또 어린 양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 양은 보좌에 앉으신 분의 손에 들려있던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 책을 받아들었습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스런 경륜이 적혀있었습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그 봉인을 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가 새 노래로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과 성도들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노래가 잦아들기 전에 또 다른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수많은 천사들의 노래였습니다. 천사들은 어린양 예수께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돌렸습니다. 그 노래에 뒤이어 또 다른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가늠하긴 어려웠지만, 그 소리는 우주를 가득 채웠습니다. 크진 않지만 시끄럽지 않았고, 다양하지만 조화로운 소리였습니다. 그것은 온 우주 가운데 있는 만물들이 부르는 영광송이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13)

온 우주에 있는 만물들이 다 주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이것은 위대한 비전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소리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삶이 제 아무리 고달파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악보를 써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우주적인 이 위대한 합창에 동참할 생각에 가슴이 설레입니다. 여기서 저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이냐시우스의 편지 가운데 한 대목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의 선율을 노래하라

"하나님의 선율을 노래하시오. 그럴 때 여러분은 함께 한 합창대가 될 것
이며 여러분이 이루어내는 조화와 사랑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노래가
여러분을 통해 울려 나올 것입니다 ― 그때 그분께서는 여러분이 그리스
도에 속하는 사람들임을 아시게 됩니다."

이냐시우스가 이 편지를 쓴 때는 편안할 때가 아닙니다. 그는 군인들의 감시하에 로마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자비한 죽음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노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는 자기의 노래를 부릅니다. 죽음조차도 그 노래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노래, 사랑의 노래였습니다. 온전히 주께 바친 영혼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노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까?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기의 선율을 연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합창을 할 때 다른 파트가 제 아무리 근사하게 보여도 자기가 맡은 파트를 불러야 합니다. 음을 잘 잡지 못하는 이들은 슬그머니 남의 파트를 따라가기도 합니다.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남이 사는 모습이 근사하다고 해서 그를 따라가다가는 자기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베짱이는 베짱이의 노래를 불러야 하고, 매미는 매미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피조물들은 저마다의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소리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이 들었던 그 위대한 우주적인 합창은 바로 그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개는 개소리를 내고, 돼지는 돼지 소리를 냅니다. 이를 일러 자효(自효)라 합니다. 세상에서 오직 자기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이게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선율에 몸을 맡기고 살면 좋을 텐데, 우리는 다른 선율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갑니다.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선율은 무엇인가?" 말이 어려운가요? 한마디로 하나님이 나를 두고 계획하신 일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것을 알고 사는 사람과 모르고 사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선율을 들을 수 있을까요?

먼저 삶의 속도를 늦추어야 합니다. 뭔가 조급한 일에 사로잡혀 있을 때 우리는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선율은 낮고 그윽해서 고요한 영혼에게만 들려옵니다.

그 다음에는 내 삶의 연주자를 바꾸어야 합니다. 헛된 욕망이 나를 연주하게 버려두지 마십시오. '나'라는 악기를 가장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평범한 악기라도 연주자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지 않습니까? 주님은 가장 위대한 삶의 연주자이십니다.


우주적인 선율을 타고 놀라

마귀가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영혼을 넘보고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복잡할수록 자꾸만 근본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잃지 않게 됩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돈도 명예도 권세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위해 우리는 너무 분주합니다. 돈과 명예와 권세의 지배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남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의 원리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남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고 남을 섬기며 살아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세상 도처에서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광우병 파동으로 도축되는 소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사무치고 있습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들의 퀭한 눈이 무정한 인간 세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광우병이 염려돼 도축되는 소라도 달라고 국제사회에 손을 내미는 북한을 보면서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굅니다. 전운이 감도는 팔레스타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숨죽인 채 신음하고 있습니다. 인도와 베네수엘라에서 지진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이 누군가의 따뜻한 보살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믿음과 사랑의 선율을 마음을 다해 부르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그들이 홀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때 그들은 우리의 사랑 노래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불협화음이 가득찬 세상에서 사랑과 믿음의 협화음이 터져나와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광경을 그려봅니다. 누구는 구름을 타고 놀고, 또 누구는 소를 타고 놀았다지만 우주적인 선율을 타고 노는 것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시간 속에 살면서 영원에 잇댄 삶을 사는 것처럼 장엄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라고 보냄을 받은 찬양대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