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2. 성전에 가득 찬 주님의 영광
설교자 김기석
본문 겔 43:1-5
설교일시 201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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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가득 찬 주님의 영광
겔43:1-5
(2012/5/27)

[그 뒤에 그가 나를 데리고 동쪽으로 난 문으로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그의 음성은 많은 물이 흐르는 소리와도 같고, 땅은 그의 영광의 광채로 환해졌다. 그 모습이 내가 본 환상, 곧 주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을 멸하러 오셨을 때에 본 모습과 같았으며, 또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본 모습과도 같았다. 그래서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주님께서 영광에 싸여서,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성전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 때에 주님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안뜰로 데리고 갔는데,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다!]

• 철든 신앙인의 조건
성령강림절 아침,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했던 성령이 오늘 우리 가운데도 임하시기를 빕니다. 부활 사건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제자들은 한 자리에 모여 기도에 힘쓰고, 주님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운명과도 같았던 오순절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가 그들이 머물고 있던 집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 같은 것이 나타나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두려움과 의혹은 사라졌고 삶의 용기와 확신이 주입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조차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뜻이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표현하기 위해 누가가 동원하고 있는 것은 ‘바람’과 ‘불의 혀’입니다. ‘영’을 뜻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는 루아흐, 헬라어로는 프뉴마라고 합니다. 둘 다 ‘입김’, ‘숨’ 혹은 ‘바람’이라는 뜻과 연관됩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정성껏 빚어 만드신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으심으로 ‘살아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의 골짜기에 생기가 불어오자 그들이 일어나 하늘 군대가 되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골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요20:22)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숨 혹은 입김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는 살아있는 영이 되고, 일어선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숨이 역사 속에 불어오면 역사 변혁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봄의 따스한 햇살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식물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이고 살리는 영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제자들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쳤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임하실 때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바울 사도는 이것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고전2:10b-11)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합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을 철듦이라 할 수 있다면, 성령은 우리를 철든 신앙인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경륜을 알고, 거기에 맞추어 자기 삶을 조율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영이 떠난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 성전을 떠나가는 영광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 있던 자기 집에서 놀라운 비전을 봅니다. 그가 유다 장로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영이 하늘과 땅 사이로 그를 들어 올려 예루살렘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역겨운 일들을 비전 가운데서 다 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도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 속에 있는 데도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죽음을 선고하십니다. 그 참담한 광경을 보면서 망연하게 서 있던 에스겔은 더 놀라운 광경을 봅니다. 그룹들 사이에 좌정해 계시던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 성읍 동쪽에 있는 산꼭대기에 머물렀던 것입니다(겔10장).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성전,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강도의 굴혈’입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탐욕의 심부가 되었다면 그 성전은 무너지는 게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차마 그런 곳에 머무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에스겔의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느낍니다. 지금 우리 형편은 어떤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는 많고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이 머물고 계신 교회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주님이 하시려는 일을 수행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성령은 처음 사랑을 저버린 에베소 교회를 향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라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겠다’(계2:5b)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두렵게 들어야 합니다. 희망의 조짐보다는 절망의 조짐이 더 많아 보입니다.

• 회복의 희망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에스겔에서 희망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죄 지은 백성, 그래서 이방 땅에 끌려가 죄값을 치르고 있는 백성을 보며 하나님은 애가 타십니다. 자식같은 백성을 사랑하기에 징계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때문에 마음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위해 희망을 예비해 놓으십니다.

“비록 내가 그들을 멀리 이방 사람들 가운데로 쫓아버렸고, 여러 나라에 흩어 놓았어도, 그들이 가 있는 여러 나라에서 내가 잠시 그들의 성소가 되어 주겠다”(겔11:16)

밧단아람으로의 먼 여정에 오른 야곱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28:15) 약속하셨던 하나님이 포로가 되어 상심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백성들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를 모른 체 하지 않으시지만, 자비로우신 분이시기에 신음하고 있는 백성의 아픔을 모른 체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들 속에 일치된 마음을 주고, 새로운 영을 그들 속에 넣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때가 되면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법도와 율례를 따라 살 것이고, 결과적으로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하셨던 출애굽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약속 하나 굳게 붙들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희망이 삶에 유입될 때 잿빛 현실은 완전히 다른 빛깔로 바뀝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36:9)라는 시편 기자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캄캄한 밤과 같은 세월을 지난다 해도, 주님의 동행하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습니다. 길 없는 곳에 길을 내며 걷는 것이 믿음의 행보입니다. 희망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그 희망을 살아내면 됩니다.

에스겔은 그 희망에 사로잡혀 고단한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지 이십오 년째 되는 해, 예루살렘 도성이 함락된 지 십사 년째가 되는 해 첫째 달 십일, 주님의 권능이 에스겔을 사로잡아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높은 산 위에서 회복되는 성전의 모양을 지켜봅니다. 성전의 측량이 다 끝나자 주님의 권능은 그를 동쪽으로 난 문으로 데려갑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그의 음성은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와 같고, 땅은 영광의 광채로 환해졌습니다. 에스겔이 그 장엄한 광경에 놀라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주님께서 영광에 싸인 채 성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습니다.

• 성령님, 임하소서
성령 강림절 아침,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다”라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의 영이 머무시는 곳이야말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어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있는 교회, 예산이 풍성해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교회, 자기들끼리 행복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역사를 새롭게 하려는 하나님의 꿈에 동참하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상처입은 백성들을 온 몸으로 부둥켜 안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참 멉니다.

하지만 지금도 성령은 바람처럼 숨처럼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람을 향해 돛을 펴는 선원들처럼 성령을 향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가 맺는 관계 속에 성령께서 들어오실 틈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래서 우리 속에 하늘의 생기가 가득 차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생의 자랑(요일2:16)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유인으로 세웁니다. 우는 이와 함께 울게 하고,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합니다. 불의에 항거하고, 강도만난 이웃들 곁에 다가서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합니까? 우리 교회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 있습니까? 너무나 오랫동안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제 통회하고 자복하면서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립시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마음을 외면치 않으십니다. 주님의 영이 임하셔서 우리를 하늘 군대로 세워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주님의 영이 불의하고 추악한 역사 가운데 임하셔서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2년 05월 27일 12시 19분 36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