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9. 누가 너를 지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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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출4:10-17
설교일시 20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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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너를 지었느냐
출4:10-17
(2001/3/4)


봄샘 추위가 남았다고는 하지만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내일이 경칩(驚蟄)이니 말입니다. 동면에 들었던 벌레와 동물들이 게으른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봄은 참 좋은 계절입니다. 그래서 아가雅歌는 노래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2:10-12)


씨 뿌리는 사람

우리 앞 집의 대나무 밭에서 지저귀는 새소리가 유난히 청량하게 들립니다. 포르릉 포르릉 날아 다니는 새들의 날갯짓이 무척이나 경쾌합니다. 사순절 기간인 지금 잠들어있던 우리 영혼도 봄과 함께 깨어나야 합니다. 조붓한 '자아'(ego)의 벽을 허물고 우리 영혼 속에 하늘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 중에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작고하신 시인 서정주님은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칼국수 만들려고
밀가루 반죽해서
방망이로 펴 놓은듯한
맷방석만한
노오란 달 하나 먹음직하게
나즈막히 뜨시고

역시 프랑스에서도 만고절색인
그 나이 이슥한 살구나무에
몇송이 살구꽃이 좋이 피었네.

분홍 구름도 몇줄
동녘 하늘엔 들러리 섰나니,
이 봄날의 대지(大地)에
씨 뿌리지않고 어이 견디리?
베레모(帽) 쓴 청년 하나
밀 씨를 뿌리고 있네.
<벵상 방고>(Vincent van Gogh)의 그림 <씨 뿌리는 사람>을 보고

"이 봄날의 대지에 / 씨 뿌리지않고 어이 견디리?" 이 대목이 절창입니다. 지금은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씨앗은 곧 생명입니다. 생명을 심어야 생명을 거두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씨앗은 다른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속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분의 호흡으로 내 숨을 고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내 삶의 안정을 뒤흔들어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너를 지었느냐

모세도 역시 부름을 받았을 때 주저했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가시떨기 가운데 나타나시어 모세를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거절합니다. 두려움 때문이었을까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는 백성들의 불신도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달래기도 하시고, 이적을 보여주어 확신시키려 하지만 모세는 여전히 흔들립니다. 그가 내세우는 핑계를 보십시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4:10)

모세는 이쯤 하면 하나님이 물러서실 거라고 생각했나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호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그를 책망하십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
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4:11)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모세의 눌변訥辯을 모르셔서 그를 부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미처 모르셨던 일을 모세가 알려드려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장부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속을 다 아십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하는 힐문은 하나님이 생각없이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세에게 쉽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말 잘 하려는 걱정 그만두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직접 말씀을 그 입에 넣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모세도 물러서야지요. 그래도 그는 뒷걸음질입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엉덩이를 뒤로 빼고 물러서듯이 말입니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자기는 그럴 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겸양이라고 해야 하나요? 책임 회피라고 해야 하나요? 사람들은 어떤 부름 앞에서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때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항상 옳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야말로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뒤로 물러서려고만 합니다. 그의 망설임은 마침내 하나님을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화가 나셔서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4:14) 하십니다. 약간 빈정거리는 느낌이 드는 말입니다.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하신 말씀은 말을 잘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뜻이고 마음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로 부름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봅니다. 그는 자기 말을 하는 자로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로 부름받은 것입니다.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하나님은 우리들 각자에게 맞는 일을 맡기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능력도 또한 주십니다.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 하시리라"(고후8:12) 했습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재능이나 물질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구요?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합니다. 우리 눈에는 작아 보여도 하나님이 크게 보시는 일이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 눈에는 크게 보여도 하나님이 작게 보시는 일이 있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3:16).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
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남이 하는 큰 일에 질려 지레 포기하지 마십시오.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이 큰 일에도 충성한다 했습니다. 그리고 명심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작은 일은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행하는 일들은 다 소중한 일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순종을 놀라운 마음으로 돌아보곤 합니다.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신앙을 가리켜 수동적 능동이라 말한 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앞질러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일 때만 길을 떠났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들도 멈췄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실 때까지 말입니다. 신앙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은 덮으시고 부족함은 채워주셔야 할 책임을 떠맡으십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인간적으로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흠이 있고, 부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이런저런 사건을 통해 다듬으십니다. 솜씨좋은 목공처럼 주님은 그들을 다듬어 아름다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도 다윗도 엘리야도 다 주님의 명령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엎드렸을 때 살아있는 혼이 되어 살 수 있었습니다.


영혼의 봄

사순절은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는 영혼의 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작은 일부터 실천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 마디, 다정한 미소,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과 이웃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소비를 줄이십시오. 땅에 묻힌 씨앗이 싹을 틔우는 데 온 힘을 집중하듯이 영혼의 봄을 맞으려는 이들은 욕망 충족을 위한 관심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검소한 생활을 해야 영혼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웃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헤아려 보십시오. 그리고 작은 시작을 두려워말고 그 일을 행하십시오.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귀히 보실 것입니다.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그 일을 하신다고 생각하십시오. "누가 너를 지었느냐?" 하신 주님의 물음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능력이고 힘이십니다. 주님의 은총의 환한 햇살이 우리 모두의 심령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