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 만족과 불만족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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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딤전6:3-10
설교일시 20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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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과 불만족 사이
딤전6:3-10
(2001/3/18)


힐러리에게 암소를

얼마 전까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 여사가 한번은 방글라데시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이샤하티 마을을 찾아가 그곳의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힐러리 여사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기들의 생활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힐러리는 여성들의 힘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질문자와 답하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마을 여성들은 힐러리 여사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파[자매님], 당신은 암소가 있어요?"
"아뇨, 없는데요."
"아파, 당신은 자기 소득이 있어요?"
"실은, 전에는 내가 직접 벌었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돈버는 일을 그만두었답니다."
"아이들은 몇 있나요?"
"딸 하나예요."
"아이들을 더 갖고 싶진 않나요?"
"네, 하나나 둘쯤 더 갖고 싶긴 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딸 첼시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마이샤히티 마을 부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참 안됐네! 힐러리 부인은 암소도 없고, 자기 소득도 없고, 아이도 딸아이 하나 뿐이라는군." 방글라데시 농촌 여성들의 눈에 힐러리 클린턴은 결코 힘이 있는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이것은 마리아 미즈/베로니카 벤홀트-톰센이 쓴『힐러리에게 암소를』이라는 책 서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이야기 끝에 저자들은 묻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여성'들이 어째서 힐러리에게 동정을 느끼는가? 힐러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 아닌가?" 그들은 나름대로 설명을 시도해 봅니다. 앞의 이야기는 힐러리 클린턴과 마이샤히티 마을 부인들의 '관점의 차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이샤히티 마을 사람들의 관점을 저자는 '밑으로부터의 관점', 곧 '자급의 관점'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삶을 살려면 돈이 많아야 하고, 물건을 많이 소유하고 소비해야 하고, 사치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논리는 그들에게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마이샤히티 마을 여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부심, 위엄, 자기 힘으로 살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부심은 남을 과소평가하는 자부심이 아닙니다. 그들의 위엄은 남을 억누르는 위엄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급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만족을 느낍니다. 그 이상의 욕심을 품지 않습니다. 그들은 돈 많은 나라, 세계 최강의 나라의 first-lady인 힐러리를 영부인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사모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힐러리를 아파, 곧 자매님이라고 부릅니다. 힐러리는 자기들과 동등한 인격과 자격을 가진 한 여인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습니다. 뭔가 보태달라고 불쌍한 표정을 짓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힐러리를 동정합니다. 그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곰곰이 돌아보게 만듭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한복판에 살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내 삶에 대한 자부심이 과연 우리에게 있습니까?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위엄을 간직한 채 살고 있습니까? 내 힘으로 뭔가 의미 있는 것들을 생산하고 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왜 제 마음이 이렇게 답답한지 모르겠네요. 서양 속담에 "목욕통 속의 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면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이라는 더러운 물을 버리려다가 '인간다움' 혹은 '위엄'이라는 소중한 가치까지도 내팽개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하나님께로 돌아가라

뭔가를 이루고, 뭔가를 손에 쥐고, 남들이 알아주는 중요한 인물이 되려고, 이를 앙다물고 살다보니 우리는 항상 뭔가에 쫓기듯 삽니다. 허긴 그럴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게으르면 쫓겨나니까요. 세상살이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게 마련인 자건거타기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지치고 피곤해도 쉬지도 못하고 또 다시 페달을 밟습니다. 조금 한가할 때면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사는 게 이게 뭐냐?' 삶은 재미가 없고, 웃음도 점점 사라집니다. 이렇게 살다 가는 수밖에 없나요? 이 삶의 속도에 적응하면서 이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톱니바퀴에 낀 채 굴러가야 하나요? 마이샤히티 마을의 여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행복은 소유나 소비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병든 인생을 살게 됩니다. 물이 병들면 바다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바다는 물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바다 '海'에 어미 '母'자가 들어있는 것은 그래서일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에 병이 들면 우리는 어머니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야 낫습니다. 우리의 병은, 그리고 지구가 앓고 있는 병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경건에 부합되는 교훈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교만해져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병이 들어서 논쟁과 말
다툼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데서,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의심
이 생깁니다. 그리고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깁니다.(6:4-5)


성스러운 단순성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누릴 것을 다 누리고, 남이 누릴 몫까지 누리며 사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만족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저질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사람이 이 말을 하면 그것은 소중한 충고가 됩니다. 바울은 가난했습니다. 굶주린 때도 많았습니다. 온갖 고난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부자가 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영혼은 물질적인 생활이 검소할 때 비로소 자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없는 것처럼 아무 것도 가지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6:8)

만족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꼭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정확하게 필요한 때에 우리를 찾아온다. 물론 필요
이상의 것은 주시지 않지만 꼭 필요한 것은 결코 빠뜨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십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저는 이 믿음을 붙잡고 감사합니다. 그 때와 방법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오로지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요황 요한 23세의 말씀을 더 들어보십시오.

모자라는 것이 없이 풍요롭게 지내게 될 때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은 열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처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계획들을
세우게 되고, 그때부터 가난하지만 만족스럽게 살던 성스러운 단순성을 잃
어버리고 만다.

이 말씀은 부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이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져 마침내는 파멸하고 만다'는 바울의 말과 완전히 부합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경험과도 일치합니다.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지만, 돈의 영향을 줄이며 살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합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는 사람이 많습니다. "知足者는 富하고, 强行者는 有志하다"(道德經, 제33장) 했습니다. 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을 헤아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한량없는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생명도, 건강도, 생의 기회도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할 때 우리는 이미 부자입니다. "知止면 所以不殆"(제32장)라, 머무를 바를 알면 절대로 위험하지 않다 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 위험에 빠지는 이들이 많습니다.


만족과 감사의 싹이 움트는 새 봄

소유는 줄이고, 주어진 것에 대한 누림을 크게 하면 인생은 한결 느긋해질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영혼은 웅숭깊어지고 맑은 빛으로 환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미가 저절로 배어 나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만족과 불만족 사이에 서있습니다.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만족하기를 배우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만족의 뒤를 쫓느라 생을 다 허비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족하기를 배우면 인생은 돌연 봄이 됩니다. 생명이 약동한다는 말입니다. "자족하기를 배우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는 성경 말씀을 영어 성경은 이렇게 새겨놓았습니다. "Do you want to be truly rich? You already are if you are happy and good." "정말 부유하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은 이미 부자입니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고 선하다면 말입니다."

마이샤히티 마을 여인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일깨워줍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덤으로 주어진 것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가끔 음반도 사고, 책방 나들이도 하고, 벗을 만나 차 한 잔도 나누고 이 모든 것들이 다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 봄에 우리 모두 불만족이라는 마음의 굳은 지각을 뚫고 만족과 감사의 새싹이 움터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