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6. 영혼의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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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벧전1:6-9
설교일시 200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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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연금술
벧전1:6-9
(2001/4/22)


민들레의 영토

요즘 혹시 강북강변도로를 따라 가보신 일이 있는지요? 저는 요즘 몇 차례 그 길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제 눈은 마치 꽃등이 켜진 듯 환해졌고, 저는 아이처럼 "야, 참 예쁘다!" 하고 탄성을 질렀습니다. 길가 잔디밭에 자라난 노란 민들레였습니다. 아무도 그곳에 심지 않았지만, 민들레는 그곳에 피어나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민들레의 영토." 바람에 날린 홀씨가 머무는 것이 어디든 조금의 흙만 있으면 돌 틈에도 피어나고, 굴뚝 옆에도 피어나고, 담벼락에도 피어나는 민들레는 질기디질긴 생명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민들레를 통해, 천덕꾸러기처럼 짓밟히는 신세이지만 끝끝내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서고야 마는 백성들을 본지도 모릅니다. 말장난이지만 민들레를 "백성을 뜻하는 '民' + 복수를 뜻하는 접미사 '들' + 올 '來'" 자로 표기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길섶에 피어있는 민들레는 일어서는 백성들의 눈물겨운 꿈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더기로 피어있는 민들레를 보면 눈물겹습니다. 반갑습니다. 온갖 생의 악조건을 이겨낸 생명의 승리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무서워하면 길을 잃는다

세상은 참 불공평합니다.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절대적인 관심과 사랑 가운데 크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로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사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쪽에는 지나치게 건강해서 죄짓는 일에 열심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는 몸이 약해 왕성한 봄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채 쓰러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분주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치 인간 세상에서 퇴출 당한 것처럼 주변부를 맴도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본래 그런 것이라고 그 불공평함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체념하라고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부름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변화의 누룩이 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한숨과 눈물을 거두고떨쳐 일어나 내 몫의 삶을 정성스럽게 살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인생이 아닙니다. 프로 레슬링 경기에 태그 매치(tag match)라는 것이 있지요? 두 사람이 편을 짜서 하는 경기인데, 매트 위에서 시합을 하다가 위기에 처하면 자기 코너로 도망쳐서 동료의 손바닥을 마주쳐 교대하는 것입니다. 가끔 인생이 힘겹다고 느낄 때면 누군가가 다가와 나를 대신하여 싸워주거나, 살아주었으면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레슬링이 아니니까 소용없는 바람이겠지요?

가야 할 길이라면 울면서라도 가야 합니다.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어들인다(시126:5-6)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북극 여행을 했습니다. 온통 눈으로 뒤덮여 사람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는 죽음의 광야를 보면서 그는 자기 마음조차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에스키모 안내인에게 물었습니다.

"무섭지 않소?"
안내원이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무서워하면 길을 잃고 말지요."

그 말이 그의 마음 깊은 곳을 때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꾸만 물러서려는 자기 마음을 앞으로 내몰았다고 합니다. 무서워하면 길을 잃습니다. 장하게 길을 찾는 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진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세진이의 보행 연습

지난 금요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낍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피플, 세상 속으로"는 며칠 전 세진이라는 어린아이의 재활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세진이는 태어날 때부터 두 다리와 오른쪽 손가락이 없어서 부모에게조차 버림받았습니다. 세 살 되던 해 지금의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건강한 딸 하나를 둔 그 양부모는 중증 장애자를 아들로 맞아들여 정성을 다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세진이에게 의족을 달아주고 보행 연습을 시켰습니다. 평지 걷기에서 시작해서, 낮은 경사로, 그 다음에 계단 오르기 등 어린 세진이의 보행 연습은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넘어지고 구르기를 거듭하다가, 힘겨운 나머지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아들을 보면서 엄마는 때때로 먼 곳을 바라봅니다.

저녁이 되어 의족을 푸는 시간 엄마는 아들의 그 가여운 다리를 정성을 다해 주물러 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듯 그 어머니의 손길에는 사랑이 넘칩니다. 세진이는 마침내 유치원 아이들과 별 불편없이 뛰놀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계룡산 관음봉에까지 올랐습니다. 관음봉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야호!' 하고 소리치는 세진이의 표정은 정말 예뻤습니다. 세진이는 길 없는 곳에 길을 만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세진이의 부모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희망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영혼의 연금술

저는 믿음을 '영혼의 연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금술은 보잘 것 없는 금속을 귀금속으로 변화시키고, 불로 불사의 장수약(長壽藥)을 만들려던 화학 기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믿음이란 보잘 것 없는 삶의 재료를 가지고 가장 소중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변화의 기적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 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내는 것이고,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누에는 뽕잎을 먹고 부드럽고 찬란한 명주(明紬)실을 자아냅니다. 조개는 자기 속에 들어와 상처를 입힌 모래에 체액을 묻혀 진주를 만듭니다. 포도즙이 발효되면 포도주가 되어 썩지 않습니다. 자연 속에 있는 이 놀라운 연금술사들은 우리들의 삶에도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지 아니함을 입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부활의 몸을 입어야 합니다. 그것은 먼 훗날 있을 일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생의 현실이 아무리 곤고하다 해도 그것을 불멸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믿음의 길에 들어선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시험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넘어집니다. 가난이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연약함이 넘어지게 합니다. 여러 가지 유혹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돈키호테의 후예들인지도 모릅니다. 돈키호테는 아무리 패배해도 다시 떨쳐 일어나 전투를 재개했습니다. 성도들은 죄와의 싸움, 유혹과의 싸움, 절망과의 싸움, 힘겨운 현실과의 싸움에서 질 것이 무서워 지레 겁을 먹고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입을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향해 돌아서라

베드로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고 있는 교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
원을 받음이라."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의 눈을 떠야만, 신앙의 눈을 떠야만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다는 말은 육신으로 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게 된 것은 보았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니라 예수의 진정을 보았고, 그의 얼을 보았고, 그의 생명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보지 못하고 사랑했다거나 믿었다는 말은 실상 그들이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돈이나 보고, 화려한 것이나 보고, 큰 것이나 보던 눈이 변하여 주님을 보게 된 겁니다. 주님을 본 사람은 스러져버릴 것을 추구하느라 애면글면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영원한 세계를 보고, 그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 가운데 어려움도 겪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삼을 때 그의 영혼에는 기쁨이 차오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이 어떠하든지,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피웁니다. 노란 민들레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속에서는 지금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영혼의 연금술사들이 되십시오. 뽕잎을 먹고 비단을 토해내는 누에처럼 아무리 힘겨워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는 열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믿음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든 아름다움을 향하여 돌아서는 능력입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