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31. 긍휼하심에 기대어
설교자 이범석
본문 마14:13-21
설교일시 2014/08/03
오디오파일 s20140803.mp3 [6111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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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긍휼하심에 기대어 >
마14:13~21
(2014. 8. 3.)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이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여러 동네에서 몰려나와서, 걸어서 예수를 따라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가운데서 앓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니,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아뢰었다.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흩어 보내서,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물러갈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리를 풀밭에 앉게 하시고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이를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 밖에,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쯤 되었다.]

*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 모두 배불리 먹었다
좋으신 주님의 은총이 성령강림절 후 여덟 번째 주일 예배에 오신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성경본문은 상당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도 하지요.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듣고 나서, 배를 타고, 혼자 외딴 곳을 찾아가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걸어서 예수의 배를 좇습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렸을 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갖고 있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복하신 후, 모두에게 나눠 주십니다. 어른 남자만 오천 명쯤 되는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놀랍고 멋진 기적이라고 감탄하며, 그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갈릴리 호수 근처 너른 들판에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모두들 예수님을 향해 있지요. 그들의 간절하고 존경어린 눈빛이 그려집니다. 병들어 고생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치료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제자들이 나눠주는 빵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으며, 그들은 행복해합니다. 병이 낫고, 또한 포만감이 드는 순간이야말로, 육체를 가진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시도들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지만 오병이어 기적의 중요한 본질은 아주 단순한 지점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힘드셔서 혼자 있고 싶어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몰려든 수다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을 치유하고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무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과 그 마음에 기댄 자들의 충만한 행복을 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와 피곤, 지치고 상함을 주님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흔들리는 눈빛, 떨리는 목소리, 힘겨운 발걸음, 지친 마음을 살피시고, 온전하게 회복시키셨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생명수 샘물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살아가면서 온갖 일들로 힘들고 지치셨지요. 차마 말 못할 여러 육신의 아픔과 곤고함으로 때로 눈물짓고 한숨 쉬기도 하셨지요. 그 상한 몸과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주님이 맞아주십니다. 주님이 알아주십니다. 주님이 치유하십니다. 주님이 배불리 먹이십니다.

구약 신명기 원시신앙고백으로부터 다윗의 시편들에서도 하나님의 들으시고 돌보시는 사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과 고역에 시달리는 것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것을 보시고,/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신26:6-8)
“이 비천한 몸도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들으시고, 온갖 재난에서 구원해 주셨다.”(시34:6,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심령입니다. 오, 하나님, 주님은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시51:17, 다윗이 밧세바와 정을 통한 뒤에, 예언자 나단이 그를 찾아왔을 때)
“주님은 나에게 응답해 주실 분이시기에, 제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주님께 부르짖습니다.”(시86:7)

주님은 당신께 다가온 자들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학대와 노역, 억압 아래 짓눌린 모습 그대로, 너덜너덜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 그대로, 오갈 데 없이 비천해진 천덕꾸러기의 모습 그대로, 온갖 고난과 아픔을 안고 주님을 찾아온 자를 모른 척 하지 않으십니다.
마치 주님 계신 곳의 지붕을 뜯고 구멍으로 침상째 내려온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처럼,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매달린 채 주님께 다가간 삭개오처럼, 회당장 신분임에도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딸의 생명을 구한 야이로처럼, 옷에 손만 대어도 구함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예수께 다가간 열두 해 혈루증 앓은 여인처럼, 주님 앞에 삶의 문제를 들고 찾아간 모든 사람들을 주님은 맞이하시고, 들으시고, 치유하시고, 돌보셨습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 앞으로 지친 몸을 끌고 나아갑시다. 주님은 우리를 품어 안아주시고, 나아갈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습니다.

* 두 잔치
오늘 이 놀랍고 신나는 잔치에 앞서서, 또 하나의 잔치가 있었음을 우리는 유념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마태는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를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란 말씀으로 시작함으로써, 바로 앞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죽음 이야기와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묘한 대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앞 이야기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분봉 왕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건의 불의함을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힙니다. 마침 헤롯의 생일 잔치가 열립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고 잔치의 흥을 돋우었습니다. 헤롯은 뭐든 바라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소녀는 제 어미가 시키는 대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로 가져다 달라고 청합니다. 헤롯은 이를 시행합니다.

여기 두 잔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둘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헤롯의 화려한 생일잔치는 기름진 음식과 향 좋은 술이 풍족하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소수의 집권 세력만이 모이는, 자기들끼리의 잔치였습니다. 게다가 그곳에서는 어이없는 질시와 복수, 끔찍한 궤계와 살인이 벌어졌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오병이어 잔치는, 갓 구운 빵과 물고기는커녕, 거친 빵과 말린 물고기로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그야말로 소박합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게다가 스러져가는 육신의 질병과 배고픔은 소멸되고, 생명이 되살아나는 잔치였습니다.
헤롯의 잔치는 풍요로운 듯 보이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잔치였다면, 주님의 오병이어 잔치는 소박한 듯 보이지만, 생명이 충만해지는 잔치였습니다.

혹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왕의 잔치처럼 풍요롭고 화려한 식탁을 차리고 예수님과 많은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겠다고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예수님이 여신 잔치를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있는 데도 욕심 사납게 ‘더! 더! 더!’를 외치는 왕궁의 화려한 잔치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배고픔을 채우는 잔치를 원하십니다. 나의 편의를 위해 너의 목숨 하나쯤은 우습게 제거해버릴 수 있는 구중궁궐의 약육강식과 권력욕, 증오, 어두운 음모의 잔치가 아니라, 너의 육신을 돌보기 위해 나의 혼자 있고픈 마음과 나의 소박한 도시락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잔치를 주님은 지향하십니다. 소녀가 추는 춤을 보며 일시적으로 기뻐하다가 결국 근심하며 맺는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된 식탁을 미리 맛보며 영원한 기쁨을 향한 길을 진정 소망하며 나아가는 잔치를 꿈꾸십니다.
그래서 헤롯처럼 욕심껏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화려한 잔치를 벌이는 삶을 살면서도, 무리들을 두려워하고,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 걱정하고 눈치나 보며 사는 자기불일치를 떨쳐내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결핍되고 상한 몸과 마음 그대로 주님을 찾아 나아와서, 주님께 치유 받고 배불리 먹으라고, 그래서 생명이 약동하는 삶을 살라고 부르십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삶은, 서로를 향한 연민과, 흔쾌히 내어놓는 공유와, 가슴 벅찬 충만함이 있는 공동체의 삶입니다.

* 너희가 주어라
지친 몸과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소박한 식탁을 마주하신 여러분! 이제 이곳에서 이뤄진 놀랍고 역동적인 활력을 제자의 관점에서 살펴봅시다.
오병이어 사건 이전에,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예수의 고향 나사렛에 갔다가, 배척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세례 요한의 죽음 소식도 들었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들은 파송받아 마을마다 두루 다니며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되돌아왔습니다.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는 상황이어서, 외딴 곳에 가 좀 쉬어야할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지쳤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무리의 먹거리와 잠자리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걱정거리를 그대로 가지고 주님께 다가가, 무리를 마을로 보내자고 합니다. 제자들은 무리 때문에 피곤했을까요? 저 역시 같은 제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제자들의 마음에 무리를 귀찮아하는 마음만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그들도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봅니다.
그런데, ‘안됐다, 측은하다, 저들이 다른 곳에서라도 배를 채워야할 텐데’ 하는 작은 관심의 마음은 있었지만, 무리에게 실제로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자신들도 그들이 측은하지만, 그들에게 줄 만큼 넉넉히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주님께 말씀 드립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
주님은, 무리를 앉힙니다. 식탁 앞의 가장처럼, 허락받은 소박한 음식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드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모두 배불리 먹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 무리와 제자됨은 활동력에 있어 작은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리는 자기 문제를 들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는 이웃의 문제를 들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저녁 때, 무리의 식사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무리 자신도 예수님도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웃의 문제를 들고 주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런 그들의 이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님은 사용하십니다.
제자들 역시 가진 것은 초라했지만, 주님께서 “너희가 주어라”고 말씀하시자, 자원의 부족을 그대로 주님께 말씀드립니다. 물론 처음엔 ‘요걸로 뭘 하시게요?’ 하는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리로 가져오너라.”하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 ‘이 적은 걸로 가당키나 하겠어?’ 라는 마음을 버리고, 제자는 이웃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초라한 소유를 주님 앞에 가져와 내어놓았습니다. 제자란, 내가 가진 바, 시간, 재능, 재물이 너무나 소박하고 보잘 것 없어서, 주님의 일을 하기에는 한참 모자라고 부족해 보여도, 그 작은 걸로 큰 기적을 이루실 주님의 긍휼하심을 신뢰하며,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사용하시기에 모자란 헌신은 없습니다. 주님은 보잘 것 없다고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며, 우리에게 없는 것을 부당하게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단지 지금 내 품 안에 있는 그것을 쓰겠다고 하십니다.
이웃을 향한 작은 마음과 헌신에 더해, 주님은 제자들의 손을 사용하십니다. 이제 그들은 의구심을 품는 적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기적을 수행하는 손과 발이 되었습니다. 무리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직접 나눠주라고 제자들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과 소유와 손을 사용하셔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으로 제자들의 믿음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훗날 이 일을 기억하며, 공동체 가운데 일어나는 기적의 역동적인 작동 원리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공동체 안에서 기적을 일으키실 때, 많은 경우, 제자들의 안타까워하는 이웃 사랑의 마음과, 작은 헌신, 그리고 수고를 아끼지 않는 손을 사용하십니다. 이 기적의 원리를 체화할 때,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도 크고 작은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 무리와 제자 사이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무리 중의 한 명이며 동시에 제자 중의 한 명일 것입니다. 내 삶에 닥친 아픔은 끝이 없는 듯합니다. 그 때마다, 찢기고 상한 마음, 지치고 쇠약해진 몸 그대로, 주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주님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고, 치유하시고,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고픔을 소박한 식탁으로 채우시고, 생명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모두 진정 행복하다고 함박웃음 짓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치유받고 채워진 여러분, 이제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보내기 원하십니다. 주변 이웃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만으로 끝내지 말고, “너희가 주어라.” “이리로 가져 오너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사랑의 수고를 실행합시다. ‘과연 될까?’ 염려하지 말고, 놀라운 기적을 이루실 주님의 긍휼하심에 기대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마음과, 소유, 그리고 손을 드립시다.
그러다 혹 지치고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을 만큼 부대끼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마음 그대로 가지고 주님 앞으로 다시 나아갑시다. 완벽한 성인이 된다면 모를까, 우리는 무리와 제자 사이를 자주 오가는 연약한 존재일 듯싶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은 적은 믿음의 사람을, 선을 위한 놀라운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정의와 자비를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주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우리 가운데 지속적으로 일으키기 원하십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주님의 긍휼하심에 기대어, 영육을 회복 받고, 동시에 오병이어처럼 놀라운 기적의 재료와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4년 08월 03일 11시 56분 0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