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26. 주안에 실패는 없다
설교자
본문 전11:3-8
설교일시 2001/7/1
오디오파일
목록

주 안에 실패는 없다
전도서11:3-8
(2001/7/1)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제가 학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늘 교목실에 와서 지내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학생이 나누는 대화가 우연히 제 귀에 들려왔습니다. 한 아이가 푸념조로 말합니다.
"나는 완전히 실패작이야."
그러자 처지가 별로 다르지 않은 한 학생이 위로삼아 말하더군요.
"아니야,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셔."
무심히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게 그 학생의 말은 예언자의 음성처럼 들려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성공이 있고, 실패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그 학생의 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실패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아름다운 생의 자료가 될 것임을 말입니다.

어떤 일이 내 뜻대로 안 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잘못된 목표를 정한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던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는 점점 본질적인 가치에 접근하게 됩니다. 이런 실패는 그러므로 '복된 실패'입니다. 그렇지만 실패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제게 "목사님, 늘 실패하시기를 빕니다" 하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실패 자체가 우리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실패가 거듭되면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자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실패한 인생 같아 보이는 데도 제 딴에는 성공한 줄 알고 사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 실패자라고 생각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성공한 사람인가요?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을 다니면 출세한 건가요? 자기가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리고 살면 성공한 것인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성공한 분인가요, 실패한 분인가요? 대답하기가 좀 곤란하지요? 그분은 돈도 없었고, 학벌도 없고, 출세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 하셨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해야 할 일을 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성공한 분이 아닐까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우리 시대의 기준은 주로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 천박합니다. 돈은 없지만 고결한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많아도 사람의 품격을 느끼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긴 했지만 올바르게 올라가질 않아서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실패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

저는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백인백색이라고 사람마다 맡겨진 일이 다 다릅니다. 내게 맡겨진 천분이 무엇인가, 이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빈센트 반 고호라는 화가 아시지요? 그는 칼빈주의 전통에서 자라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복음 전파자로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벨기에 남부의 보리나쥬라는 광산촌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그런 반응 속에서도 그를 살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망이 자기 속에서 넘쳐흐르려고 할 때마다 그는 자기의 '진짜 일', 곧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가 될까봐 그것을 억압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27살 나던 해 그는 자기의 천분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깨닫게 됩니다. 고호는 그 발견의 감격을 동생인 테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 테오야, 지나간 쓰라린 몇 달 동안 난 무엇인가를 향해 열심히 일하면서 내 인생으로부터 그 진실한 목적과 의미를 캐내려 노력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걸 몰랐다니! 하지만 이제 그걸 알았으니 난 다시는 결코 꺾이지 않을 거다. 테오, 그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니? 그 몇 달을 헛되이 지낸 뒤에 마침내 내 천분을 발견했다는 얘기야! 난 화가가 될 거다. 물론 화가가 되어야지. 꼭 그래야만 돼. 그 때문에 다른 모든 일에서 난 실패했던 거야, 그런 일들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 결코 실패할 수가 없는 단 하나의 일을 찾았구나. 아, 테오, 감옥이 마침내 열렸다. 그리고 그 감옥문을 열어준 사람은 바로 너야!"(어빙 스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호}, 109쪽)


그는 자기가 모든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자기의 천분을 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실패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을 찾았기에 더 이상 실패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천분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나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것도 하찮은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한 정성을 가지고 그 일을 하느냐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길을 떠난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그 목적지와 연결된 길 위에 있습니다. 길을 가다가 지칠 수도 있습니다. 잠시 한눈을 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따라 사는 사람은 이미 실패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현실이 암담해도

우리는 과연 그것을 알고 삽니까? 그런 물음조차 잊어버린 채 살지는 않습니까? 사람을 가리켜 "의미를 묻는 존재"(Sinn-frage-Sein)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선택하는 말과 행동의 의미를 명확히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이고, 깨어있는 사람은 실패자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는 길을 분명히 알고 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그것을 찾기 위한 순례의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빈센트 반 고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하겠습니다. 마우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호의 작품이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고 하여 그를 경멸했습니다. 작품이 팔리지 않으니 너는 형편없는 화가라는 논리입니다. 그때 빈센트 반 고호는 말합니다.


"그게 화가임을 뜻하는 건가요, 그림을 판다는 게? 나는 화가란 언제나 무엇인가를 찾으면서도 끝끝내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뜻한다고 생각했었죠. 나는 그건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찾아냈다'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나는 화가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단지 '나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며 심혈을 기울여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일 따름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찾아낸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중용에서는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도리를 '誠'이라 하는데, 誠이란 선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중히 붙잡는 것(誠之者人之道 擇善而固執)이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거죽이 아니라 골수를 붙잡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지극한 정성이란 멈추지 않는 것(至誠不息)입니다. 기분내키는대로 처신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늘 한결같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삶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있습니다. 그는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나날의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천분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현재에 충실하십시오. 그것이 천분을 발견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비오는 현실이든, 먹장 구름이 드리운 현실이든, 햇빛이 양양한 현실이든 그것을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십시오. 현실이 내 뜻과 같지 않다고 원망만 하다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지혜자는 말합니다.


"바람이 그치기를 기다리다가는, 씨를 뿌리지 못한다.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다가는, 거두어들이지 못한다."(11:4)


성공적인 삶의 출발점은 오늘이다

저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다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누며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데도, 돈이 좀 더 모아지면 틀림없이 좋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기의 다짐대로 하는 이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중간에 그것이 다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약1:15) 했습니다. 틀림없는 말씀입니다. 조금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보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저는 그런 기회가 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그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오늘 할 수 없는 일은 내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우리의 경험입니다. 나눔은 넉넉할 때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부족하더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헌신은 여유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바쁘더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자라지 않고, 신앙생활에 감격이 없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복음의 명령대로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사람은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 예상치 못했던 감격과 위로와 평안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길은 늘 좁은 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야 생명을 얻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게 요구되는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 될지,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11:6)


삶 전체를 하나님께 봉헌하라

세상이 우리의 수고를 몰라주면 어떻습니까? 당장 우리에게 보상이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다 주의 일을 위해 부름받은 종들입니다. 종은 주인의 일을 하면 그만입니다. 칭찬이나 보상은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기쁘게 감당한다면 우리는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주의 길 위에 서있는 이들에게 실패란 없습니다. 다소 가난하게 살 수는 있습니다. 출세의 지름길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왜 사는지를 알고 산다면 삶에 비애는 없습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것조차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루에 단 한번이라도 우리 삶을 돌아보면서 그분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것입니다. 기쁨과 슬픔, 절망과 고통, 성공과 실패, 분노와 시기심까지라도 다 그분께 바칠 때 주님은 그것으로 아름다운 생을 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온전히 하나님께 봉헌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등 록 날 짜 1970년 01월 01일 09시 33분 2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