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 사람아, 일어나라
설교자 김기석
본문 겔 2:1-10
설교일시 2016/05/15
오디오파일 s20160515.mp3 [13265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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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일어나라
겔 2:1-10
(2016/05/15 성령강림절)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일어서라. 내가 너에게 할 말이 있다." 그가 나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영이 내 속으로 들어와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계속 듣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곧 나에게 반역만 해 온 한 반역 민족에게 보낸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처럼 이 날까지 나에게 죄만 지었다.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바로 그 자손에게, 내가 너를 보낸다. 너는 그들에게 '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하고 말하여라.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다. 듣든지 말든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것만은 알게 될 것이다. 너 사람아, 비록 네가 가시와 찔레 속에서 살고, 전갈 떼 가운데서 살고 있더라도,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이 하는 말을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 앞에서 너는 떨지 말아라.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다. 그들이 듣든지 말든지 오직 너는 그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이다. 너 사람아,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을 들어라.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처럼 반역하지 말고, 입을 벌려,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을 받아 먹어라." 그래서 내가 바라보니, 손 하나가 내 앞으로 뻗쳐 있었고, 그 손에는 두루마리 책이 있었다. 그가 그 두루마리 책을 내 앞에 펴서 보여 주셨는데, 앞뒤로 글이 적혀 있고, 거기에는 온갖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이 적혀 있었다.]

• 절망의 자리에서
성령강림절 아침,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불꽃처럼 임하시는 성령이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태워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이 생기를 잃고 비틀거리고 있는 우리들을 하늘 군대로 일으켜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단비처럼 내리시는 성령이 메마른 우리 심령에 임하시어 우리가 생명의 춤을 추며 살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오늘은 절망의 자리에서 살고 있던 에스겔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영에 대해 잠시 묵상해 보려 합니다.

에스겔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제1세대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제사장 가문 출신인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때는 제 삼십 년 넷째 달 오일이었습니다. 다소 뜬금없는 날짜입니다. 대개 학자들은 그것을 에스겔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나이인 서른 살에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봅니다. 에스겔서는 그때를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온 지 오 년 째 되는 그 달 오일이라고 재차 확인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긴이 왕위에서 쫓겨나고 포로로 잡혀간 것은 기원전 597년이라고 합니다. 그때로부터 5년쯤 지난 시간이니 에스겔이 소명을 받은 때는 대략 기원 전 592년 경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포로생활 5년은 아마도 지극한 절망의 어둠에서 가까스로 벗어나와 살아갈 궁리를 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들은 폐위되었던 여호야긴을 자기들의 정체성의 중심으로 삼고 새로운 희망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포로민들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는 땅, 그발 강가에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성경은 에스겔이 머물고 있던 곳을 '델아빕'(3:15)이라고 하는 데 그것은 '홍수로 인해 폐허로 변한 땅'이라는 뜻입니다. 큰 물이 한번 지면 애써 일구어놓았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지곤 하는 절망의 땅이었던 셈입니다. 성전으로부터 멀어졌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실상 더 어려운 문제는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바로 그 때 에스겔은 하늘의 환시를 보았습니다. 인간의 언설로 형용하기 어려운 비전이었습니다. 그 경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에스겔이 동원하는 단어는 폭풍, 큰 구름, 불빛, 광채 등입니다. 에스겔은 앞쪽은 사람의 얼굴이고,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고, 뒤쪽은 독수리의 얼굴인 네 생물을 보았는데 그 생물은 번쩍거리는 바퀴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고, 그 위로는 광채에 둘러싸인 보좌가 있었습니다.

• 일어선 존재
어느 순간 보좌로부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아, 일어서라. 내가 네게 할 말이 있다." 이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일어서라'는 말은 단순히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라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포로민들의 현실을 배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기력의 심연에 빠져들고 있던 그의 백성들을 일어선 백성으로 만들고 싶어하십니다. 한 영이 에스겔에게 임하자 에스겔은 일으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일으켜 세우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사울은 하나님의 분노에 사로잡혀(삼상11:6) 암몬 족속의 압박을 받던 갈르앗 야베스를 구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초대교회 신자들은 일어나 골방 문을 박차고 나가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프랑스 조각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를 좋아합니다. 그는 늘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길쭉하게 형상화하곤 했습니다. 그는 누워 있는 사람을 조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기가 늘 직립한 사람을 조각한 까닭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수평의 인간은 잠이요, 의지상실이요, 인간다움의 포기요, 굴복이요, 백치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무리 빈약한 체구를 가졌더라도 서 있을 수 있는 한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수직성에 관한 나의 철학이고 미학이다."

부득이 자리에 누워 지내는 이들을 폄하하기 위해 한 말은 물론 아닙니다. 그는 현실이 어렵다 하여 쉽게 낙심하고 자포자기하기보다는, 힘겹더라도 허리를 곧추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존엄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겁니다. 하나님의 영은 절망의 자리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일어서야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이웃 곁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그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고 계신 주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으켜 세워진 에스겔을 당신의 일꾼으로 삼아 반역만 해온 백성, 죄를 짓는 일에 익숙하고,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은 굳을 대로 굳어진 백성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명하셨습니다.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외롭고도 힘겨운 일입니다.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감언이설로 에스겔을 유혹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가 가시와 찔레 속에서 살고, 전갈 떼 가운데서 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다가 결실이 보이지 않으면 낙심하곤 합니다. 하지만 성심껏 그분의 일을 수행한 이들은 그러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권면한 말씀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6:9)

결실이 눈 앞에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평화의 씨, 생명의 씨를 뿌릴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평의 사람을 수직의 사람으로 일으켜 세웁니다. 불의에 분노하게 하고, 약자들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품게 만듭니다. 모든 경계를 넘어 하나됨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삿된 열정에서 벗어나 거룩한 삶을 향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를 자유인으로 만듭니다.

• 세상의 아픔을 앓다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하여 낙심할 것 없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성령의 법이지 죄와 죽음의 법이 아닙니다. 듣지 않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예언자를 보내시는 까닭은 그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언자의 존재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거두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징표입니다. 당장은 듣지 않아도 어느 순간 예언자의 말이 그들 앞을 비추는 등불이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내면화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소화하여 자기의 품성과 인격과 지향으로 바꾼 사람입니다. 에스겔은 자기 앞에 뻗친 하나님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아듭니다. 거기에는 조가와 탄식과 재앙의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예언자는 세상이 겪을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아픔을 함께 겪어내는 사람입니다.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만연한 세상에 살면서 자기 홀로 자족의 자리에 머무는 이들은 하나님을 안다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의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기억합니다. 살과 피는 곧 생명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이들은 예수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다가 죽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죽음의 자리에 그저 누워 있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주님의 생명을 모셔 들여 우리 또한 '일어선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상한 갈대 같은 우리일지라도 하나님이 영을 불어넣으시면 우리는 하늘 곡조를 연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슴을 가득 채우며 흘러나오는 사랑의 가락이, 평화의 노래가 이 땅에 울려퍼질 때 이 척박한 세상은 조금씩 따뜻해질 것입니다.

지금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들로 인해 낙심한 이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일으켜 세워주시기를 빕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셨던 주님의 음성이 지금도 들려옵니다. 죽음의 너울을 걷고 절망과 두려움의 무덤에서 걸어나오십시오. 그리고 생명의 노래를 지금 시작하십시오. 그 노래가 주위로 번져 모든 이들이 그 노래에 동참할 때까지 그 노래를 그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주님과 동행하는 나날이 생명의 축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6년 05월 15일 11시 03분 2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