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6. 나를 누구와 견주겠느냐?
설교자 김기석
본문 사 40:21-26
설교일시 201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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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누구와 견주겠느냐?
사 40:21-26
(2016/09/04/창조절 제1주)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으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 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땅 위의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놓으셨다. 그는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시며, 땅의 지배자들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풀포기와 같다. 심기가 무섭게, 씨를 뿌리기가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말려 버리시니, 마치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가 나를 누구와 견주겠으며,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너희는 고개를 들어서, 저 위를 바라보아라. 바로 그분께서 천체를 수효를 세어 불러내신다. 그는 능력이 많으시고 힘이 세셔서,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 나오게 하시니,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 사랑의 기름 방울
주님의 은총이 창조절 첫 주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바티칸에서는 20세기에 가장 아름다운 섬김과 사랑의 본을 보였던 마더 테레사의 시성식이 열린다고 합니다. 인도 콜카타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어 살았던 그의 삶은 종교, 이념, 국가의 경계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을 자처했습니다.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세상을 향해 아름다운 편지를 쓸 수 있는 법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했던 말 가운데서 제 마음에 크게 와닿는 게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큰 병은 결핵이나 나병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병은 약으로 고칠 수 있지만 고독, 절망, 무기력 같은 정신적인 병은 사랑으로 고쳐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수많은 병리현상의 뿌리도 아마 고독, 절망, 무기력 같은 것들과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의 자리를 효율성이 대신하고, 인간적 따뜻함의 자리를 돈이 대신할 때 세상은 병들게 마련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공포심을 주입하고, 욕구불만을 일으켜 우리가 행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합니다. 정신의 여백이 부족하니 타자를 위한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삽니다. 테레사는 자매들에게 큰 일을 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희미할망정 언제든 꺼지지 않는 작은 등불이 되라 말합니다.

"사랑이 참되려면, 탁월한 사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등불은 어떻게 빛을 냅니까? 작은 기름방울을 끊임없이 공급받아 빛을 냅니다. 기름방울이 바닥나면, 등불의 빛도 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신랑은 '나는 너를 모른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마태복음25:1-13 참조) 자매들이여, 우리의 등불에 들어 있는 이 기름방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네 일상 생활의 자잘한 것들, 곧 성실함, 시간 엄수,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말씨,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씨, 차분함,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종교 생활을 생생한 불꽃처럼 빛나게 하는 사랑의 기름 방울입니다."(마더 테레사, <즐거운 마음>, 김순현 옮김, 오늘의책, 2003년 10월 10일, p.184)

종교는 일상과 구분되는 특별한 영역이 아닙니다. 세상을 밝히는 등불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기름은 특별한 사람, 훈련받은 사람만 알 수 있는 심오한 진리가 아닙니다. 따뜻한 마음, 성실한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준비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일상과 무관한 신앙적 가르침은 거짓에 귀착되기 쉽습니다.

• 광대무변의 세계 앞에 서다
우리네 삶은 늘 힘겹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이기에 우리 내면에는 깊은 불안과 우울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우리 삶을 야금야금 좀먹고 있고, 주어진 삶을 한껏 누리며 사는 능력은 점점 퇴화되고 있습니다.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웃는 사람 만나기 어렵고, 따스한 온기로 주변에 생명의 기운이 깃들도록 하는 이들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테레사는 그런 삶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해서는 일상의 자잘한 일들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도 그게 옳은 처방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삶이 너무 힘겨울 때, 도무지 앞이 내다보이지 않을 때, 우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해찰하다'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사전적 의미는 "일에는 정신을 두지 않고 쓸 데 없는 딴 짓을 하다"(민중 에센스 국어사전)입니다. 다소 부정적인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단어를 조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가끔은 한 눈을 팔 수 있어야 삶의 긴장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원을 걸어도 앞만 보고 걷는 이들은 빨리는 걸을 수 있을지 몰라도 길 주변에 있는 풀꽃이나 작은 곤충들을 관찰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해찰하는 아이들이 어쩌면 창의적인 삶을 누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방이 가로막혀 낙심할 수밖에 없을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바라봅니다. 무심해 보이는 저 하늘, 그 광대무변의 세계를 바라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기 때문일까요? 믿는 이들에게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이들은 왜 그럴까요?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그 상황을 견디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광대무변의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들이 처한 현실을 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제2이사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포로민들에게 하나님의 희망을 전하면서, 그들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광대한 세계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가 전해 들은 것이 아니냐? 너희는 땅의 기초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알지 못하였느냐? 땅 위에 저 푸른 하늘에 계신 분께서 세상을 만드셨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메뚜기와 같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마치 엷은 휘장처럼 펴셔서, 사람이 사는 장막처럼 쳐놓으셨다."(40:21-22)

물방울이 떨어지듯 이어지는 질문 앞에서 사람은 다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폭풍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욥에게 저 광대한 세계와 그 속에 있는 온갖 피조물들을 가리켜 보이며 그것들이 창조될 때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욥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욥42:3)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의 도덕 감정을 거스르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냐고 묻지만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십니다. 실상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 창조의 리듬 안에서 살아가기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하는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만 말문이 막힐 따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아무 일도 안 하시는 것 같지만 실은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 것도, 천체가 조화롭게 운행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것을 뽑기도 하시고, 세운 것을 헐기도 하십니다. 민족들의 운명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나라도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이들은 지금 번성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소멸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창조의 리듬에 따라 살아갈 따름입니다.

노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도덕경 73장)이라 말했습니다. 하늘 그물은 넓어서 성기어도 빠뜨리는 게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거나 남을 속여서 자기 이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그물까지 벗어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힘으로 다른 나라를 제압하는 패권국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림자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만드시며, 땅의 지배자들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풀포기와 같다. 심기가 무섭게, 씨를 뿌리기 무섭게, 뿌리를 내리기가 무섭게, 하나님께서 입김을 부셔서 말려 버리시니, 마치 강풍에 날리는 검불과 같다"(40:23-24).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보아내는 신비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의 권세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확고히 따르는 사람입니다. 창조절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욕망 주변을 맴도느라 좁아진 우리 마음을 넓혀 저 영원의 세계에 잇댄 채 사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리듬 속에 머물며 자기 삶을 조율할 때 우리는 영적 자유를 누릴 것이고, 사랑에 무능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 머물며, 그 은총을 주위에 전하는 복된 나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16년 09월 04일 11시 04분 02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