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 보시기에 참 좋았는데
설교자 이범석
본문 창 2:8-9, 15-17, 3:1-6
설교일시 2023-02-26
오디오파일 s20230226-2.mp3 [39062 KBy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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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기에 참 좋았는데
창세기 2:8-9, 15-17, 3:1-6
(2023/02/26, 사순절 첫 번째 주일)

[주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첫 주일입니다. 지난 재의 수요일로부터 시작한 사순절 순례길을 잘 걷고 계시는지요. 우리가 나아갈 순례의 방향을 생각하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 삶의 제한
창세기 2장의 창조 이야기는 에덴동산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일구시고, 사람을 거기에 두셨습니다. 동산에는 열매 맺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습니다. 이 열매들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았습니다. 동산은 풀 한 포기 없던 곳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풍성한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 아름다운 곳을 맡아서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동산의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 (2:16-17)
하나님은 왜 이런 제한을 두셨을까요?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삶에는 이런 식의 어쩔 수 없는 ‘제한’이 늘 있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보니, 호모 사피엔스이고, 수십억의 인구 중 나의 부모 형제 자매는 정해져 있었고, 내 피부색, 민족, 국가 등 많은 것들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제한점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주어진 조건을 갑갑한 제한으로 여긴다는 점을, 뱀은 꿰뚫고 있었습니다. 뱀은 우리의 어느 부분을 건드리면,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뱀이 사람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3:1)
사람은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3:2-3) 라고 답변합니다.

뱀은 처음부터 동산 한가운데 있는 금지된 열매를 먹으라고 충동질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장된 몸짓으로 거짓을 섞어 가며, 인간의 약한 고리 부분을 콕 집어 질문할 뿐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너, 요즘 어떻게 지내? 아니, 좀 많이 힘들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 같아서 그렇지 뭐.’
사람은 화들짝 놀라 답변합니다. ‘힘들긴? 누가 그래? 우리 잘 지내지. 다 좋아. 아유, 참. 문제 하나 없는 사람이 있나? 괜히 건드려봤자, 죽을 고생만 할 것 같으니까, 신경 안 쓰고 살아. 사람들 다 그러면서 사는 거 아냐?’

뱀은 사람의 마음에 틈이 생겨났음을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데도, 사람은 하나님께서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면서, 금기에 대해 길게 부연 설명하고 있는 걸 들으며, 눈치를 챘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금기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약간의 불만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깨고자 하는 욕망 역시 아주 적지만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뱀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3:4-5)

* 욕망의 눈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은 둘 중 누구의 말을 신뢰할까요? 하나님 대 뱀, 이 양자택일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그랬을까요?
의사이자 상담가인 레이첼 나오미 레멘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옛날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류해욱 역, 이루파, 108-112) 그녀의 할아버지는 유대인 랍비이셨습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신 뱀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이브는 사춘기 소녀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돌봄과 보호 아래에 있었고, 순종하며 지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미지의 세계와 신비, 또 지혜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 또한 나날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뱀이 금지된 나무의 열매로 유혹한 것입니다. 호기심이 왕성한 그녀는 ‘금단’이란 것, 그 자체가 지닌 마력에 이끌려 그 열매를 따서 한입 깨물고야 말았습니다.

사춘기 자녀의 반항과 성장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합니다. 에덴의 첫 사람들도 그랬을까요? 확실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진짜 부모 자식 간이라면, 이거 하나는 분명할 것 같습니다. 자식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반항하곤 합니다. ‘우리 부모님이 뭐라 뭐라 하셔도 결코 날 죽이지는 않을 거다! 슬쩍 져 줄지도 모른다.’ 에덴의 첫 사람들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호되게 야단치시기야 하겠지만, 진짜로 죽이지까진 않으시리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진짜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면, 결코 열매를 따 먹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죽이시기까지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며, 에덴의 사람은 그 나무의 열매를 바라봅니다. 그 열매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습니다. 사람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배우자에게도 주어, 그도 역시 그것을 먹었습니다.
사실 뱀이 해 준 말 덕분에 그 열매를 다시 자세히 보았던 겁니다. 예전엔 먹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고, 스스로 자제하며 만지지도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들어오자, 계속 그것만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그 열매를 보면 볼수록, 그걸 먹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 보시기에 참 좋은 존재들, 나, 너, 우리 모두
그런데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건, 그 열매뿐이었을까요? 오늘의 말씀 창2:9이 중요합니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고, 마치 그 열매만 특별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한 것처럼 굴었는데, 사실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가 다 그러했습니다. 마음을 두고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안 그런 열매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손수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어떤 마음이셨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창1:31에,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조의 6일간 당신께서 지으신 피조물들을 보시고 얼마나 흐뭇하셨던지 “보시기에 좋았다”고 반복하여 쓰여 있습니다.
나무 열매만 좋으셨을까요? 아니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도 보시며, 좋아하셨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보기에 좋았는데, 예쁘고 사랑스러웠는데, 사람의 눈이 동산 한가운데 있는 금지된 나무에 꽂히자, 그것만 특별히 더 먹음직하고 보암직했던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결국 뱀이 사람에게 한 일은, 금지된 것을 더 자세히 보고, 오래 보도록 이끈 겁니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한껏 누리면서, 풍족한 기쁨을 나누고 행복해했던 모든 것을 초라한 것으로 여기게 했습니다. 그런데, 더 끔찍한 건, 유혹을 받은 사람이 유혹 이후 자기 자신을 유혹 이전보다 더 하찮은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타락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유혹을 받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에 외적으로 보이는 나의 결과물이 흡족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 그는 그것을 아예 가리거나, 타인의 시선을 외면하고 차단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결핍감, 수치심을 해결하려 하게 됩니다. 조너선 색스는 시각에 붙들린 삶의 방식들을 수치심의 문화와 연결하여 이 내용을 설명합니다. (조너선 색스, 매주 오경 읽기 영성 강론: 하나님보다 앞서 걸어라, 김준우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31-37) 수치심이란, ‘타인의 기대에 내가 미치지 못할 때, 스스로 자신이 나쁘다고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에덴의 사람과 뱀의 이야기에는 온통 “외면, 수치심, 시각, 눈”에 관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눈이 밝아졌지만,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게 될 뿐이었습니다. 다른 특별한 지혜는 그들에게 추가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그들이 수치심을 느꼈고, 하나님의 눈길로부터 숨으려고 피합니다.
요즘처럼 오디오보다 비디오가 중요한 시대,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 SNS를 눈으로 계속 확인하며, 끊임없는 선망과 질시, 자기 비하와 감춤, 변형, 포장, 거짓에 익숙한 우리 시대의 단면을 이 이야기는 그대로 반영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조너선 색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타인들이 지배하는 도덕에 지배당할 것인가? …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남들의 눈에 보이는 우리의 모습인가?”

사람은 그 열매를 먹지 전에도 충분히 슬기로웠고, 아름다웠고,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인 사람이 슬기롭지 않았을 리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손수 빚어 만든 사람이 아름답지 않을 리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다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누구의 인정이 더 필요합니까.
그런데 더 슬기롭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것이 있으니, 그걸 한번 보라는 말을 듣자, 자기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충만하게 누렸던 모든 것이, 한순간 충분치 않은 아니 부족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 열매를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한 충동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써 그들은, 뱀의 표현 그대로,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었습니까? 사람의 기대처럼, ‘슬기롭게’ 되었습니까? 아니요. 눈이 밝아지기는 했지만, 밝아진 눈으로 본 것은 벗은 몸뿐이었습니다. 실상 그들 안에는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기에, 충분히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이었고,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과 슬기 또한 이미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자기가 누구를 닮았는지, 누구로부터 유래했는지를 그들 자신만 몰랐던 겁니다. 그들만 자기의 본질을 믿지 못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비하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자기 형상을 잊은 이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앞서 이야기해 드렸던 레이첼 나오미 레멘은 이런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열매를 먹은 사춘기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한 마디로 어른으로서 변화무쌍한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그녀는 때론 모험을 감행해야 했고, 그 책임을 힘겹게 져야만 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그녀 삶의 기준이 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내면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반항과 성장통을 겪으며, 사춘기 소녀는 어른이 되었고, 참된 지혜를 내면으로부터 들으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경지에 차츰 이르게 된 것입니다.
조너선 색스도 비슷한 말을 들려줍니다. 그는, 유다이즘은 ‘듣는 종교’라며, 아브라함, 모세, 예언자들이 그 당시의 사람들과 달랐던 이유를, 그들이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했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듣는 것은 우리를 다른 사람의 영혼에 연결시켜주며,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세상에서 우리의 과업을 위해 우리를 불러내시는 하나님의 영혼에도 연결시켜”줍니다.
저는 깊이 있게 보는 것과 귀담아듣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상기도처럼 말입니다. 눈이든 귀든 피상적인 것에 매몰되면 유혹의 통로가 될 것이지만, 깊은 내면으로 내려가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맞닿은 통로가 될 것입니다.

* 사순절; 생명의 빛으로 채워가는 시간
사순절입니다. 四旬. 넉 사, 열흘 순, 말 그대로, 40일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얼 자세히 보고, 무얼 귀담아들으며, 이 40일을 지내야 할까요?
전통적으로 이 기간은, 부활절 전 40일간, 기도, 금식, 절제, 자선을 배우고 실천하며, 부활, 즉 참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걷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그런데 사순절을 영어로는 Lent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고대 영어 lencten 즉, 봄, 봄철이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합니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시기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사순절은 어둠 가운데 빛을 조금씩 더 더해가며, 완전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절기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생명, 평화와 같은 본질에 더 가까이 나아가서, 참된 중심과 하나 되는 훈련을 하는 절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절기 동안 세 가지를 자세히 보고, 귀담아들으며, 빛을 더해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사순절기 동안 시간을 내어, 자세히 오랫동안 나 자신을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수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 넣으신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멋진지 스스로 잘 알아 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아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 이미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밖의 다른 특별한 열매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과 이미 주어진 우리 생태계 자체로 충분합니다.
저는 주로 교회학교 학생들과 지냅니다. 교회학교 아이 중 개구쟁이도 있고, 독특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때론 선생님들이 버거워하는 친구들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말썽꾸러기도 자신만의 뚜렷한 장점, 멋진 자질을 하나 이상 갖고 있습니다. 사실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지 않은 친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단점이나 결핍에 대해 유난히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친구를 만나면, 저는 참 속상합니다. 까불까불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의기소침해져서 생명력을 잃은 것처럼 구석에 앉아 꼼짝 안 하고 있는 건 참 가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둘째, 내 곁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나처럼 정말 멋지다는 걸 발견하는 시간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멋진 지혜와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사순절기 동안 상대방에게 있는 빛나는 면모를 호명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파에 시들어가는 가족이나 이웃이 있다면, 내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서, 서로 활짝 웃는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만큼이나 하나님을 감동하게 했던 세상의 여러 동식물을 살펴볼 기회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게일 보스가 쓰고, 데이비드 클라인이 그린 ‘무모한 희망- 사라져가는 동물들과 나누는 사순절 이야기’(터치북스)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에는 수마트라오랑우탄, 붉은가슴도요 등등 멸종 위기 동물들의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우리 친구들의 기막힌 모습에 집중하다 보면, 바로 사순절의 중심부에 이르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동물들의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면모에 경탄을 거듭하다가, 그들이 너무나도 끔찍하게 사라져가고 있음을 듣게 될 때, 우리는 에덴 상실의 아픔과 에덴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되새길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느낄 때” 우리의 마음은 말할 나위 없이 상하게 됩니다. 피조물들이 원래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알면 알수록, 그 고통은 더더욱 쓰라리게 체험되고, 그럴수록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여, 스러지는 생명에게 빛을 더하고 싶은 깊은 열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의 순례길을 걷는 동안, 우리가 피조 세계 모든 구성원의 아름다움과 지혜로움을 되새기며, 그 생명의 빛을 지키고, 세상을 더욱 환하게 하고자 결단하고 움직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등 록 날 짜 2023년 02월 26일 12시 10분 44초